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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2 영화 문라이트/배리 젠킨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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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 2. 영화 '문라이트' / 배리 젠킨스 

이현옥  

  달 있는 밤에 죽을까. 달 없는 밤에 죽을까...

   돼지가 집을 나갔던 겨울 어느 날. 엄마는 생강을 팔러 가시기 전에 몇 번이고 나에게 돼지밥 잘 주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머리에 얹은 생강보따리를 손으로 잡지도 않은 채, 땅바닥에 떨어질까 봐 그래서 생강들이 바싹 부러질까 염려가 앞서는 내 속도 모르고 손짓까지 해 가며 당부에 당부를 더하셨다.

  그리곤 이내 사립문을 나서셨는데, 정작 나한테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는 하셨던가? 오빠 밥 잘 해주라던 말씀은 기억이 또렷하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였지 싶다. 그해 겨울 나는 보리쌀 씻은 구정물과 무 껍질 등으로 최선을 다해 돼지를 섬겼다. 혼기가 찬 큰언니의 시집갈 밑천이라는 것과, 새끼돼지 값을 언니가 서울 뚝섬의 가발공장에서 기침을 해 가며 번 돈으로 장만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  그 겨울 앞선 여름, 언니가 휴가차 내려왔을 때, 그 얼굴은, 허옇다 못해 누렇게 떴었다. 병색 완연한 낯빛이었지만 집안을 이리저리 보살피고 내 머릿니와 서캐를 잡아주고 빨래를 도맡아 해줬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돼지우리에 구정물을 부어주며 내던 입소리는 얼마나 여자다웠던가. 그날 오후 돼지가 돼지우리를 뚫고 나와 울타리 밑 양잿물을 핥아먹고 나뒹굴었을 때, 동네 아저씨들이 오셔서 뭘 먹인 뒤 가까스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멈춰지고 후들거리며 일어서는 돼지의 목을 언니는 끌어안았다.

  고통스러워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진득한 침과 흙이 잔뜩 묻어있는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니는 돼지 주둥이께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며 눈물을 흘렸다.

  그 돼지가 집을 나간 것이다. 하필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 나갔다. 홀어머니가 허름한 나무로 엉성하게 엮어 만든 돼지우리를 벗어나 설상가상 썩어가는 지푸라기 울타리를 뚫고 마루 끝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며불며 소리치던 나를 뿌리치고 다른 먹이를 찾아 집을 나간 것이다.

  나는 정작 돼지가 마당을 킁킁대며 사납게 돌아다닐 때는 나를 해칠까봐 두려움에 벌벌 떨다가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돼지가 울타리를 뚫고 나간 뒤에야 마루에서 내려와 동네방네 오빠들을 찾아 나섰다. 웬만큼 내 호소가 전해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 놓았다. 마루 끝에 앉아서 돼지가 돌아오기를 빌며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갔는데 돼지를 몰러 간 동네 오빠들 소식이 없고, 나는 온갖 상상에 몸을 움츠리곤 울었다. 돼지가 집으로 돌아온다면...? 내가 먹을 보리밥까지 네게 줄 것이다.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토록 당부하고 떠난 엄마를 다시 보느니, 온갖 욕설과 매질과 수모를 당하느니, 아예 이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말겠다. 굳게 다짐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었다.

  그런데 어떻게 죽지...? 우리 집 감나무에 목을 매다는 게 나을지 우물에 빠져 죽을 지 둘 중 택하면 좋을 성 싶었다.

  나의 운명은 저 돼지한테 달려 있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초가집 지붕을 넘어가고 저 멀리서 남자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도 같다. 이때 또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달 있는 훤한 밤에 죽을까 달 없는 캄캄한 밤에 죽을까.

  나에게 『문라이트』-달빛은 돼지가 집을 나가던 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꿈꾸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도 사춘기를 지독한 고립 속에서 내 출생에 대한 의문이 들거나 모멸감에 사로잡혔을 때, 서너 번은 더 생각했던 것 같다.

  내 그림자에 지레 놀랐던, 달빛 훤한, 캄캄한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오던 성장기의 내 모습이 영화 속 문라이트 소년을 아프게 쳐다본다.

2019.02.14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2019-02-19 13:12:0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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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02
     [re] 영화 문라이트 정보  김경운  2019-02-19
13: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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