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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7. 틀못 -3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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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7. 틀못 3

3

  잠이 덜 깬 아니 술이 덜 깬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아저씨들은 번갈아가면서 우리들 눈팅이를 밤팅이로 만들겠다는 듯이 입에 악을 물었다. 매운탕 끓여먹으라고 붕어새끼까지 줬는데 그게 쌍욕으로 돌아와? 요런 호로 개상녀르 새끼덜! 어젯밤에 자신들에게 욕해댄 새끼들을 잡아서 단박에 요절내고야 말겠다고 받침대를 땅에 팍팍 찍으며 식식거리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텐트 속에서 끌려나와 무릎 꿇린 채 사정없이 걷어차이고 있었다. 그 때 순하디순한 모범생 종수가 나섰다.

  “아저씨, 우떨도 피해자당게요. 엊저녁에 여그 와서 노래 부른 놈들이 우덜떨을 한 명씩 텐트 속으로 몰아넣고 패댐서 돈이랑 다 뺐어갔당게요.”

  두 꾼은 곧이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더 거세게 눈알을 부라렸고 '빤한 지랄 말라'고 입똥내가 튀었다.

  그러나 종수가 워낙 간절하게 얘기를 했고, 어제 어둑해질 때 붕어새끼를 준 적도 있지 않냐고 두들겨 맞아서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불쌍하게 말을 내려놓았고, 이 틈을 타고 여기저기서 피해를 입은 가짜 상황이 쏟아지자 아저씨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아저씨들은 곧장 물러가지 않고 '요것들이 틀림없는디, 틀림없는디...' 하는 표정으로 불쌍한 티를 내고 있는 우리들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느그들도 피해자라닝게 그냥 가기는 간다만, 속 터져 죽겄네잉. 그 호로 개상녀러새끼덜을 어떻게 잡어서 회를 친디야. 증말로 승질나서 못 살것네.”

  고개를 짜웃대며 아저씨들은 물러갔다.

  묵사발이 될 뻔한 우리들은 뺀질뺀질 되살아났다. 순둥이 종수의 어깨를 툭 치며 우리는 깔깔깔 부활했다. 무릎은 꿇렸을망정 두어 차례 사정없이 걷어차였을망정 여기서 끝난 게 천만 다행이었다. 아저씨들은 엎드려 뻗쳐!를 명령하고 작살 같은 받침대로 우리 엉덩이며 허벅지를 사뭇 조져댈 판이었기 때문이다.

   꾼들이 내 허벅지만한 잉어를 끌어냈든, 피라미 한 마리도 못 잡아서 틀못이 털못이 되었든 말든 며칠 전에 찾아본 틀못은 확 바뀌어 있었다.

  법조타운인가를 조성한다면서 틀못 위쪽의 옥계동(만성리)이며 눈에 익은 논밭은 온데간데없고 오죽잖은 철골구조들이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파트들이 들어차 있었다.

  문명은 열여섯 살짜리가 가출했다가 집에 돌아온 뒤 여기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을, 열여덟 살짜리들이 뜨겁게 말아먹었던 여름밤을 점방 구석에 처박혀 먼지나 뒤집어쓴 빼빼 마른 북어꼴로 만들어버렸다.

  경제가 뭔지 개발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눈에 익은 풍정을 무덤 속같이 파헤쳐놓고 거기에 아파트 단지와 빌딩을 채워 넣는 행위 따위가 문명의 몫인지 그것도 나는 잘 모른다. 삶의 터를 까뭉갠 문명이 인간적 삶의 폭을 얼마나 넓혀놓았는지를 따져볼 능력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바람소리와 새소리에 버무려진 햇살이 몸에 감기던, 새벽어둠이 낮은 숨소리를 열고 꾼들에게 안개옷을 입혀주던, 생활에 지친 숨소리들을 위로해주던 틀못의 풍정을 저 미련해 터진 철골들과 알량꼴량난 아파트들이 알 턱이 없다.

  틀못은 철없는 열여덟 살의 여름밤을 끌어안았던 것처럼 이 지역 농군들의 원怨과 한恨을 뼛속 깊이 새겼을 것이었다.

  소외가 뭔지, 문명사회가 뭔지도 모르고 들밥 먹는 농군들의 모습을 제발 돈으로 환산하지 말라고 눈을 부릅뜨기도 하며, 제 품에 가둔 물을 툭 터서 마른 논밭에 젖을 물리며 농군들의 검어진 시간까지 닦아줬을 것이었다.

  옥계동, 장동리, 용정리, 원동, 뒤얼리에서 평생 농사짓고 살았던 분들 - 그분들에게 땅을 빼앗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냐고, 문명이 할 짓이 돈의 노예짓뿐이냐고 틀못은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 꺾었을 터였다.

  작살 같은 낚시받침대로 우리를 단단히 혼꾸녕 내고 싶었던 꾼들, 그 분들께 사과도 못하고 나는 그 분들보다 나이를 한참 더 먹어버렸다. 그 동안 뭣하고 살았길래 세상이 요모냥 요꼴이냐고 물으시는 것 같아 죄송하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돈이고 경제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고향의 혼백까지 콘크리트에 묻어버리는 일은 돈도 경제도 아닐 거라고, 멀쩡한 산천 까뭉개는 - 근본 까먹는 장사 좀 그만 해 쳐먹으라고, 느덜떨은 씨벌 누구의 씨알이냐고 호통 치는 꾼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더 죄송하다.

  세상은 나에게 속수무책束手無策만 가르쳤던가. 그래서 내 기억은 유통기한이 지난 꽁치 통조림처럼 버려지고 말았던가. 담배나 빼무는 내 마음을 짚는 중인지 이따위 막된 세상에서 가출해버리고 싶은지 틀못이 바르르 제 몸을 또 떤다.

  인간이 만든 날짜와 시간을 버리고 그만저만 만기출소하고 싶은 모양이다. <다음 편에 계속>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48

[2019-02-18 15:58:5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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