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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7. 틀못 -2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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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7. 틀못 2

2

  고2 여름방학 때였다. 일곱 명이나 되는 우리는 틀못 둑 반대편 산자락에 낚싯대를 한 대 씩 폈다. 둑에는 꾼들이 쭈욱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렁이를 단 지 두어 시간이 더 지난 것 같은데도 피라미 입질조차 없었다. 물고기들은 꾼들이 않아 있는 둑 쪽으로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매운탕은 끓여먹고 싶은데 이거 참 난감했다.

  그 때 누군가 꾀를 내었다. 사실 우리는 붕어매운탕 끓여 소주 한잔 걸치고 젓가락 장단을 치면서 목청껏 노래 부를 요량으로 온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묵은지 넣고 끓인 붕어매운탕같이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숨기고 어떻게든 모범생처럼 보여서 꾼들에게 새끼붕어 한두 마리 씩만 동냥질해오기로 한 것이었다. 틀못 둑의 저쪽에서 이쪽까지 훑으면 한 냄비는 그냥 찰 것이었다. 우리는 겉으로도 순해 보이고 실제로도 순하디순한 종수를 앞장 세웠다. 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사정이 여차여차하니

  “쪼깐한 붕어 한두 마리만 주세요, 피라미도 좋아요, 매운탕 끓여먹게요.”

  이렇게 나오면 꾼들은 붕어새끼 한두 마리 쯤 미련 없이 던져줄 거라고 확신했다. 더구나 어른들은 모범생을 좋아하니까. 우리는 종수에게 재차 붕어새끼 동냥질 방법을 연습시켜서 꾼들에게 보냈다.

   대성공이었다. 꾼들은 모범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물고기 동냥을 온 모범생 종수가 귀엽기도 했을 것이었다. 주는 쪽에서는 한두 마리지만 받는 쪽에선 꾼들을 거칠수록 물고기가 팔딱팔딱 늘어났던 것이다. 감잎만 한, 고춧잎만 한 붕어새끼와 피라미로 그들막해진 큰냄비를 들고 종수가 신나게 걸어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오밤중에 끓여먹을 매운탕감만 따로 챙겨두고 큰솥에 배 딴 물고기들을 왕창 쏟았다. 고추장을 풀고 된장기를 하고 장작개비에 불을 붙였다. 물고기 얻어왔던 냄비에는 밥을 했다. 큰솥이 한 번 끓어넘치자 불땀을 죽였다. 다갈다갈 오오래 지질 것이다. 그렇게 지져야만 고추장에 버무려진 묵은지와 붕어들이 입에 설설 녹아난다는 것을 누구든 알고 있으니까.

  냄비에 밥을 두 번이나 해댔어도 큰솥에 담긴 매운탕은 목 당그래질이 뭔지도 모르고 다갈다갈 끓기만 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쯤 드디어 매운탕 솥뚜껑이 열렸다. 우리는 앞다투어 뻘겋게 지져진 묵은지며 물고기들을 눈 깜박할 새 먹어치웠다. 소주 댓병이 동났다.

  모기에 피를 빨리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입질은 없었다. 낚싯대를 팽개치고 텐트 속으로 들어간 녀석도 있었다.

  “야, 매운탕 끓여서 한 잔 더 하자.”

  우리 중 누군가가 맹숭맹숭한 우리들 가슴에 불을 확 댕겼다. 다갈다갈거리며 다시 매운탕이 끓었다. 자정이 가까웠을 거였다. 소주 댓병을 땄다. 스텐 밥공기 반을 채운 소주를 우리는 단숨에 들이켰다. 소주 한 잔에 매운탕 한 수저, 붕어만 건져먹기 없기, 술 취한다고 텐트 속에 들어가는 놈은 내 아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주도酒道였다. 장작이 되얹어진 모닥불은 밤더위가 뭔지도 모르고 혓바닥 날름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댓병 두 개가 금세 동났다. 다른 댓병을 가져와서 또 말리기 시작했다.

  혀 꼬부라진 밤이 얼마나 깊었을까. 이렇게 맨날 방학이면 좋겠다. 둑 쪽의 칸데라 불빛이 너울너울 춤추며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이렇게 놀려고 온 것이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퍼질러대기 시작했다.

  일곱 명이 한꺼번에 불러대는 노랫소리는 금세 틀못을 일으켜 세울 듯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한 곡이 끝나면 "노래야 나오너라 쿵짝짝 쿵짝, 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 쿵짝짝 쿵짝, 엽저어언 여얼다아앗냐앙!"

  모기가 뜯어먹든 조각달이 우리를 보고 히죽거리든 말든 여름밤은 우리들의 노랫소리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붕어가 잘 잡히는 둑방 쪽을 향해 들으라는 듯, 아저씨들 고기는 이제 다 잡았다는 듯 악을 썼다.

  “야이, 씨버럴 놈덜아. 조용히 안 헐래? 낚시질을 헐 수가 업자녀?”

  한 낚시꾼이 목 가래톳을 확 세웠다. 그러자 둑방 여기저기서 쌍욕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로, 이은하의 ‘아리송해’로,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로, 쩌렁쩌렁 틀못을 덮쳤고 그럴 때마다 틀못은 아랫도리를 뒤틀며 고개를 뒤로 제끼며 몸을 바르르 떨곤 했다.

  “야 이 개새끼덜아, 증말로 조용히 안 헐래? 쥐알태기만헌 것떨이 말도 드럽게 안 들어처먹네? 느그들 참말로 조용히 안 혀!”


  그러자 우리 중 누군가가 그 꾼의 욕을 받았다.

  “예, 아저씨. 알었어요, 조용히 허께요, 씨벌놈아.”

  “머라고? 저 쥐좆만헌 것떨 좀 보게. 시방 우덜떨허티 씨벌놈이라고 혔냐? 요런 모가지를 확 잡아 뽑아버릴 놈덜, 너그들 거그 쪼매만 있어!”

  “예, 아저씨. 우리가 잘못혔구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개새끼야”

  꾼의 말이 건너오는 족족 우리는 말끝에 욕을 붙여서 되돌려줬다.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았던 꾼들은 그러나 우리 쪽으로 오지 못했다. 노랫소리가 워낙 우렁찼으므로 모닥불에 어른거리는 쪽수가 열댓 명은 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는지도 몰랐다.

  겁이 나서 못 왔는지 더러워서 안 왔는지는 모르지만 칸데라 불빛을 물속에 처박은 우리에게 꾼들은 그 밤에 적수가 못 되었다.

  조용필의 노래「촛불」을 한사코 ‘좆불’로 치켜세우며 “불 타는 불고기럴 먹어보랑게, 말 못 허는 말고기도 먹어보랑게!” 목구멍이 찢어져라 틀못 곳곳을 찔러댔다.

  철천지 웬수를 만난 것처럼 바락바락 악쓰며 목타루가 콱 주저앉아 헛심 팽길 때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땅의 가시내들을 허벌나게 사랑한다는 - 지금 이 순간에 칵 죽어도 좋다는 노랫발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밤의 파수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열여덟 살짜리들은 아무 설명도 없이 좁아터진 텐트 속으로 들어가 쿨쿨 잠 들어버렸다.

  “엊저녁에 우덜떨헌티 욕헌 새끼가 누구여, 후딱 안 나와!”

  웬 아저씨 둘이 작살같이 생긴 낚시받침대를 꼬나 쥐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45


[2019-02-16 07:13:46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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