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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7. 틀못 -1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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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7. 틀못 -1

1.

  중학교 3학년 1기분 수업료가 내 안주머니에 있었다. 3월말고사 평균은 61점. 회초리에 내 종아리가 툭 터져버려야 아버지 직성이 풀릴 것이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공부는 늙어서 잠 안 올 때나 하는 것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안주머니 속의 수업료가 설레고 있었다. 전주역에서 여수행 완행열차를 탄 나는 전주 시내를 빗속에 묻어버렸다.

  자신을 털보라고 소개한 사장님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얼굴빛이 하얀 미남이었다. 먹고 자고 얼마를 받겠다고 약속했는지, 기술만 배우기로 약속했는지 그것은 모르겠다. 양복 짓는 방에서 잠을 잤고 세 끼 밥은 사모님이 손수 내오셨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복점 바닥에 물을 치고, 바닥을 쓸고, 밖이 내다보이는 진열장 유리를 닦았다. 그러다가 사장님이“ 다녀오니라.” 하면 와이셔츠 여러 장을 어깨에 걸치고 오바르꼬 치러 여수 시내 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넘어 다녔다. 공부 안 해도 되고, 밥 잘 먹고, 밤에 잠도 잘 자고, 심부름 잘 한다고 사장님께 이쁨 받고 불티나 양복점에서 나는 행복했다. 학교 다닐 처지가 못 되어 양복점에 취직한 줄로만 알고 양복 기술을 전수해 주시겠다던 사장님, 내년엔 오동도로 동백꽃 구경을 가자셨던 털보 사장님, 가끔 시켜주시는 짜장면 곱빼기를 눈쩔에 먹어치우며 영어 수학에 골치 아플 친구들이 불쌍했다.

  그런데 불티나 양복점과 여수역의 거리가 1킬로미터도 안 된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오바르꼬 친 것을 찾아오다가 오르막길에서 내가 사는 동네 아주머니와 딱 마주친 것이다. 여수에서 도매로 미역을 떼어다 이 동네 저 동네에 소매를 했던, 젖무덤 출렁거리던 아주머니의 눈알이 단박에 광채를 띠었다. 뭔가 건수를 잡았다는 눈빛이었다. 니깟놈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이런 표정이었다. 그 이틀 뒤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집에 잡혀왔다. 내 가출, 내 행복은 보름도 안 되어서 끝나버렸다.

  급우들은 내 등짝을 때려대며 교실로 돌아온 나를 환영했다. 미리 기죽을 일도 마음 한쪽이 허전할 새도 없었다. 다음에 튈 때는 자기도 꼭 데려가라고, 이번엔 서울로 튀자고 빌린 돈 받아낼 때 것처럼 약속해줄 것을 요구했다. 못 지킬 그 약속을 다 받아주면서 웃기는 했지만 마음 한쪽이 뭔가 서늘했다. 가출 그것은 장한 일이 아니었다. 용기와 전혀 관계없는 돌발행동에 불과했다. 그러함에도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했고 급우들이 정답게 다가올수록 어쩐지 내가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즈음일 것이었다. 내가 틀못을 찾게 된 때가.

  눈앞에 황방산이 있고 그 아래로 논밭이 치맛자락같이 펼쳐졌다. 땅의 형세가 느리게 내리막인 이곳에, 논밭뙈기로 못 써먹을 여기에 물은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저절로 만들어진 이 저수지를 ‘틀못’이라고 불렀다. 베틀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들은 얘기는 이게 아니었다. 우리나라 지도를 닮은 저수지이지만 어딘가에서 형세가 틀어졌으므로 이름이 ‘틀못’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황방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틀못은 정말 우리나라 지도와 비슷했다. 그런데 모양 어딘가가 이상했다. 둑 아래에 솔숲을 조성해서 제주도까지 본떠 놓았지만 부산 쪽에서 틀어졌는지 포항 쪽에서 틀어졌는지 지도 모양이 이상했다.

  사람들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틀못은 물을 가둬 그 아래 논밭을 먹여 살렸다. 옛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어른들은, 일제 때 왜놈들이 갱도 파는 기술을 가진 중국인들을 데려와 임시 철로를 놓고 황방산 흙을 퍼 날라 둑을 더 높게 쌓았다고 했다. 조선인에겐 곡괭이와 삽을 줘서 저수지의 폭을 넓히도록 했고. 하지만 왜놈들 손 타기 수백 년 전부터 저절로 만들어진 저수지가 틀못인 것은 확실했다. 어른들의 기억은 때로 역사책보다 더 정확한 경우가 많은 데다 땅의 형세가 물을 가둘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으므로 그렇다. 거기가 지금의 혁신도시에 있는 기지제, 장동리 저수지라고도 불리는 틀못이다.

  내가 사는 유제리에서 십여 리. 뒷모정을 떠나 수렁배미, 용정리를 꼬불꼬불 지나는 꽤 먼 길이었지만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면 나는 여기를 찾았다. 한 칸 반짜리 대낚시 미늘에 지렁이를 끼어 틀못에 던졌다. 그러나 나는 뭘 잡는 데 소질이 없나보았다. 내가 낚싯대를 편 자리에서 오성록 형이 어른 허벅지만한 잉어를 끌어냈다고 했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낚시꾼들이 붉은 황토를 지게로 몇 바작째 쏟아놨다는 자리에 낚싯대를 던져도 고춧잎 같은 붕어새끼나 피라미가 물려 나오기는커녕 아예 입질이 없기 일쑤였다. 둑길에 주욱 늘어서 앉은 낚시꾼들은 조용했다. 고기가 물든 안 물든 그 분들의 행동과 말씨는 씨알 굵은 붕어의 입질처럼 묵직했고 품위가 있었다. 들판과 야산자락을 양 어깨에 두른 틀못은 멀리 있는 황방산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나를 불러낸 것일까. 외로움이 이런 것일까, 뭐 그런 생각도 하면서 혼자서도 틀못에 자주 왔다. <다음 편에 계속>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08


[2019-02-13 21:48:5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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