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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6 달빛 찌르기(3)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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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6. 달빛 찌르기(3)

3

“영장 나왔응게 후딱 내려와라잉? 8월 10일이다잉? 시외전화닝게 끊는다잉?”

  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영장이라니? 신체검사도 안 받았는데. 그렇다면 영장이 아니라 신체검사 받으라는 통지겠지 이렇게 짐작을 하다가 아니, 그런데 내가 신문보급소에 있다고 집에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전화가 왔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가출하신 몸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번쩍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AID 아파트 근처에서 만났던 그 동창애다. 이 여우가 나를 생각한답시고 뒷조사를 한 게 틀림없었다. 공부는 무슨 공부, 압구정동에서 신문배달하고 있다고,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나하고 결혼할 것도 아니면서 이 백여시 같은 년은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걱정을해댔을 터였다. 이 여시코빼기 같은 년이 동네방네 나발 불어대는 통에 집에서조차 내가 뭐를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저녁때 신문을 돌리고 나면 작곡가 사무실에 가서 레슨을 받았으며 깊은 밤까지 무명카수들 틈에 끼어 화장품 냄새에 섞여 국산 양주를 축내다 잠들었다. 그 다음 날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나는 신문보급소로 돌아왔던 것이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전주에 내려왔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카수의 길을 밑바닥부터 다져나가는 데 자신이 없었는지, 폼나게 대학가요제 출신 카수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 밤무대에 서보지도 못한 주제가 카수의 실상을 듣고 겁을 냈는지도 몰랐다. 돈이 있어도 - 노래에 목숨을 걸었어도 너는 생김생김이 졸토뱅이여서 가망이 없다고, 달빛 찌르기에 불과하다고 오장을 지르던 어떤 카수 형의 말에 오갈이 팍 들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공사장에 나가서 철근을 맸고, 밤이면 야간학원 단과반에 다녔다. 점심때쯤 잠에서 막 깨어 띵띵 부어오른 눈을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던 누님 카수들이 그리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나는 모 대학에 합격을 했고 드디어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축제 때 교내 가요제에 출전해서 내 존재감을 알렸고, 당시 화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천상윤 형에게「임 찾아 가는 길」이란 곡을 받았던 것이다.

  천상윤 형은 우리의 스타였다. 작사, 작곡에 탁월한 것은 물론 기타를 치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케니 로저스의 「레이디」노래를 부를 때면 형의 노랫발에 빨려들지 않은 학우는 없었다. 형이 가는 데마다 여학생들이 줄줄줄 따라붙었다. 물론 형은 그 여대생들에게 하염없이 다정다감했으며 애써 내치지도 않았다.

  대학가요제에 뜻을 둔 몇몇의 우리들에게도 따뜻했다. 하지만 노래 연습을 시킬 때는 사정이 없었다. 입 시늉으로 노래 부르려는 학우들을 사정없이 나무랐다. 이런 형의 지도 아래 나는 목을 세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처럼 거울을 보면서 소리낼 때마다 변하는 입모양을 살폈다.

  목구멍을 좁혔을 때 내는 소리와 목구멍을 넓혔을 때 내는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고음 처리할 때는 왜 목을 숙여야 하는지를 다시 실험했다. 목청이 제대로 서지 않는 대목은 몇 번이고 다시 불렀다. 똥구멍을 올려붙여서 소리를 질러대도 피가 터지지 않는 목을 애달아하며, 쇳소리 묻은 목을 소금물로 달랬다.

  가요제에 나가기 직전에 정양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께서 노래를 들어보시더니 노래가 좋고 목소리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셨다. 교수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면 이건 대단한 거다, 교수님은 아무에게나 칭찬하시는 분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번엔 진짜 한판 붙는 거다.

  나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본선에서 대상을 받은 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카수가 될 것이며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다. 집부터 사야겠다. 지긋지긋한 셋방살이에서 벗어나서 동생들에게 방을 한 칸 씩 내줄 것이며, 동생들 옷을 철마다 메이커로 세 벌 씩 사줄 것이며 부모님께 떼돈을 안겨드릴 것이다. 나는 가요계와 밤업소를 장악한 일등 카수로 군림할 것이다. 해외 공연도 부지런히 나가야겠다. 이제 형식적 절차만 남았다.


  1984년 12월 초, 가요제 예선이 끝나고 친구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전주 MBC 공개홀에 가득했던 방청객들 앞에서 나는 제대로 소리 한 번 못 질러보고 뒷걸음질 쳤다. 결정적인 순간에 노래를 몸에 붙여서 부르지 못하고 생목만 질러대다가 제풀에 목이 탁 꺾여버렸던 것이다.

  음표의 이쪽저쪽을 자유자재로 끌어당겼다 놔줬다 다시 끌어당기며 사람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던 내 격렬한 목타루. 망망대해에 순풍 만난 돛단배처럼 노래를 잔잔히 깔아가다가 한순간에 태산을 덮쳐버릴 듯 옹골차게 터지던 내 목구성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사람의 숨통을 옥죄듯 노래 마디마디에 소름이 짝짝 끼치더라는 내 음색을 누구에게 죄다 빨린 것이냐. 정말로 달빛이나 찌르다가 시궁창에 처박혀버린 것이냐.

  응원을 왔던 친구들은 말도 없이 집으로 가버렸다. 기타를 전봇대에 박살내버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소주를 먹었다. 내 목구성에 큰 기대를 했던 천상윤 형에게 정말 미안했다. 예선 탈락, 세상에 예선탈락이라니. 빈 나뭇가지에 달라붙지 못해서 안달인 바람이 미치게 목덜미를 할퀴어댔다.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가 나도 모르게 혀에 감겼다. 떠듬떠듬 그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는 젖지 않았는데, 눈물이 줄줄줄 쏟아졌다.

  노래 한 곡 부르기 위해, 정식으로 취입해서 수천 번도 더 불렀을 자기 노래 한 곡을 다시 부르기 위해 연습실에서 두세 시간 씩 공력을 들이는 가수. 음표 한 개 한 개에 허투루 다가서는 법 없이 욕심껏 목청이 서지 않는 대목을 몇 번이고 다시 부르며 관객에게 노래구걸하지 않겠다고 공력을 들이는 가수. 나는 그 분들께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치는 중인지도 몰랐다.

  노래를 목으로 불렀든 배로 불렀든 등짝이 갈라지는 아픔을 견디며 불렀든 자기 예술에 치열한 노래는 모두에게 위로나 설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에 새기는 중인지도 몰랐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개코같은 말을 내 사전에서 지우리라.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도 확실히 캐내리라. 노래에 목숨을 걸기는커녕 목소리를 세우기도 전에 떼돈과 수천수만의 관객에 쏠려 있었던 내 도둑놈 기질이 나를 살리리라.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60

[2019-02-11 16:01:0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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