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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6 달빛 찌르기(2)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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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6. 달빛 찌르기 (2)

2

  “너 정말로 카수하고 싶냐?”

  전주가 고향이라고 다가온 카수 형이 밥을 사줬다. 내 나이와 숙식을 어떻게 하냐고 묻더니 가수협회증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노래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가수협회증이 없으면 업소에서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돈이 좀 들지만 그것은 전국 어떤 업소에서나 노래 부를 수 있는 면허증이니까 필수적으로 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쯩’을 따면 업소에 가서 오디션이란 걸 봐야 하고 그것에 합격을 해야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형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편곡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형은 에라, 이 촌놈아! 이러면서 노래책에 나온 음표만 가지고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작곡가에게 가서 한 곡당 2, 3만원을 주고 편곡을 한 악보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북소리와 색소폰 소리와 피아노 소리와 기타 소리 등등이 어울린 악보가 있어야 업소 밴드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업소에서 한 스테이지를 허락받으면 보름을 간격으로 세 곡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첫 번째 노래는 브루스, 두 번째 노래는 고고나 디스코, 세 번째 노래는 다시 브루스 이렇게 한 스테이지가 끝난다고 했다. 보름을 간격으로 다른 곡을 불러야 하니까 한 달에 6곡의 편곡비가 있어야 하며, 너는 키가 작으니깐 굽 높은 구두를 따로 맞춰야 할 것이며, 의상비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했다. 카수하려면 밥은 굶고 다녀도 이발소에 갈 돈은 있어야 한다고, 매일 이발소에 갈 자신 있냐고 물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노래 불러서 돈을 왕창 벌고 싶은데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드는 것이냐, 도대체 한 달에 얼마를 버느냐 묻고 싶었지만 얘기가 더 길어질 것 같아 무작정 자신 있다고 대답해버렸다.

  밥을 다 먹고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카수 형은 느닷없이 바늘로 내 허벅지를 찔렀다.소스라치듯 내가 놀라자 껄껄 웃으며, 방금 소스라치면서 온몸이 꿈틀거리던 떨림을 목소리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그것이 진짜 바이브레이션이라고 했다. 노래가 익으면 너도 아주 잘하게 될 것이라면서 취입은 할 거냐고 물었다.

  “그 거 돈 많이 든다. 디스크를 내는 걸로 끝나지 않고 방송국 오디션도 받아야 하고, 취입한 디스크 싸들고 방송국 음악 프로마다 찾아다녀야 하는데 너 자신 있어? 돈은 있고? 돈 없으면 이 바닥에서 못 먹고 산다, 너.”

  도대체 알 수 없는 얘기가 다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대답도 못하고 멀뚱히 형을 바라보았다. 카수 형은 오늘 밤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업소 구경도 하고 프로들의 노래도 들어보라고 했다. 가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 자정 넘어 무교동에 있는 월드컵 캬바렌가 뭔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카수 형은 이따가 만나자면서 밥 굶지 말라면서 만 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술은 마시러 가겠지만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신문배달을 하느라고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면 배가 쉽게 꺼졌다. 수중에 돈이 푼푼할 리가 없었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튀김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제일 싼 오징어발 튀김을 사먹었다. 그것을 먹고 나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만치 속이 느글거렸다. 기분 나쁜 그 느낌이 싫어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두부를 사먹었다. 김치도 없이 생두부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러노라면 김치가 환장하게 먹고 싶었다. 그래도 싸구려 튀김보다는 두부가 허기 채우는 데는 더 나았다. 내가 이렇게 허기를 면하고 살긴 하지만 돈을 받을 순 없었다. 나는 장차 카수왕이 될 사람이므로.

그날 밤 나훈아의 노래를 기똥차게 부르는 형은 포장마차에서 술과 가락국수를 샀다. 그리고 나를 반지하로 데려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거기는 가수들 합숙소 같은 곳이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자 카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술들이 거나했다. 카수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들가지처럼 낭창거리는 여자들 너댓 명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털썩 주저앉더니 핸드백에서 담배와 양주병들을 꺼내들었다. 나를 원숭이 보듯, 어디서 이런 촌뜨기가 왔냐는 듯 몇 차례나 고개를 짜웃거리더니 술을 권했다. 겉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거웃 드러난 겨드랑이를 아무에게나 들켰다. 양주병을 몇 병이나 비웠는지 목소리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남녀불문하고 입에서 씨팔!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귀에 이런 소리만 들려왔다. 돈만 있으면 내가 이런 데서 자겠느냐, 돈만 있으면 내가 그런 데서 노래품을 팔겠느냐,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누가 내 바지를 벗기고 잠자리에 뉘였는지도 모른다. 술냄새와 화장품냄새가 뒤섞인 어떤 여카수가 나를 품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따뜻했다. 포근했다. 그 품은 넓고도 깊었다. 내 머리 위에서 고르게 퍼지는 날숨 끝에 술냄새가 묻어 있었다. 여린 숨이 오갈 때마다 여카수의 가슴이 내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곤 했다. 내 머리를 자신의 팔로 감싼, 허벅지와 허벅지가 포개어져 맨살이 맞닿은 데마다 온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런 품을 진작부터 알고 있다는 듯, 이런 품속에서 살아봤다는 듯, 갈 곳도 없고 잘 곳도 없어 밑 터진 공중전화 부스 속에서 이빨을 닥닥 떨며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내 스무 살을 이해한다는 듯, 기다렸다는 듯 그 품은 빨판같이 내 몸을 감싸고 죄었다. 그럴수록 나는 작은 새처럼 몸을 더 작게 말아서 여카수의 품을,누님이 분명할 품속을 파고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소리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목에서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누나는 나를 더 끌어안으며 진저리를 쳤다. 지금 이 순간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숨소리가 끈끈해지고 있었다. 오줌이 마려웠지만 엄지발가락을 교대로 문질러 가며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포근했던 그 품에서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골치가 지끈거렸다. 버스를 타고 압구정동으로 돌아오는 새벽- 돈, 돈, 돈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울었다. 가수협회증, 정식 카수, 업소 밴드 수에 맞춘 악보, 굽 높은 구두, 의상비……. 노래품 팔아서 받는 돈은 하루 치장하는데도 모자랄 것이었다. 카수 형이 전해 준 이런저런 말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서 골치가 더 지끈거렸다. 반포대교를 넘어가는 차창에 아침햇살이 비쳤다. 어둠에 불빛을 대고 조각조각 오려붙인 것처럼 아름다웠던 야경을 등 너머로 보내고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햇살은 따뜻한 온기를 골고루 펴서 퍼뜨리고 있었다. 무명 카수들이 곯아떨어진 반지하 방에도 저 햇살의 온기가 닿기를 나는 바랐다. 그렇게 후닥딱 대여섯 달이 지나갔다.  <다음 편에 계속>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54


[2019-02-09 11:36:3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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