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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5 버드랑죽-앞시암2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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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5. 버드랑죽 - 앞시암2

  어르신은 동네 연유를 캐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대신에 내 증조부와 할아버지의 이력을 대충 추스르더니,

  “동네 원래 이름은 유제리가 아니고 유지리여. 버들 유柳, 연못 지池 혀서 유지柳池인 것이여. 일제 때 왜놈덜이 연못이었던 자리를 넓혀서 파고 그 제방으다가 버드낭구를 심고설랑 유제리라 헌 것이지. 여그를 버드랑죽이라고 헌 것은 일제시대 훨씬 전이고. 버드낭구 심어진 제방보다야 버드낭구 심어진 연못이 낫긴 허지만 동네 이름이 유지柳池든 유제柳提든 상관이 웂어. 원래 어른들은 여기에 터를 잡음서 도연명을 생각하고 버드낭구를 심었을 터이닝게. 거 있잖여, 귀거래사歸去來辭라고.”

  “그렇다면 유제리가 천 년 동네였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마다. 길이야 많었것지만 옛날에는 전주 관아에서 김제나 부안으로 가는 길을 잡을 때 동산촌(지금의 전주시 동산동)을 끼고 돌아서 이 동네 뒷덜미인 뒷방죽을 거쳐서 갔지. 그러닝게 김제 부안 사람들이 전주 관아를 들어올 때 여그도 한 관문이었던 셈이여. 거그 사람들은 여그가 전주인 중 알고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동네였다지. 천 년 내력을 가진 고래등 겉은 기와집 100채가 훨씬 넘는 양반동네였당게”

  “그래요? 그런데 왜 이렇게 동네가 쪼그라졌습니까?”

  어르신은 잠시 말을 끊고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동네의 어디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법한 눈초리는 사뭇 준엄했다. 빼빼마른 몸 어디에서 저런 정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하고 싶은 말을 몸속에 친친 감아둔 것처럼 신음 비슷한 콧소리가 담배연기 속에 섞여 흩어지곤 했다.

  “앞시암 때문이었지. 원래 앞시암은 지금 자리가 아녀. 주 씨네 미나리깡 에미미나리 크는 디가 원래 앞시암 자리여. 시방보담도 물이 세 배는 철철 넘쳤다지. 그런디 이 동네에 원한을 가진 놈이 있었던 개비더라. 조선의 1등 풍수쟁이라고 호가 난 놈이었다는디 앞시암을 시방 자리로 옮기라고 혔다등만... 그러면 동네에 큰인물이 짜꼬 난다는 것이여. 당시 양반들은 그 풍수쟁이 말만 믿고 앞시암을 냉큼 시방 자리로 옮겼지 않았것냐. 물이야 좋았지. 아무리 가물어도 물길 끊어지는 법 없고, 그렇게 큰시암에서 박적으로 물을 막 퍼먹는 디가 조선 천지 어디에 또 있다더냐. 조선에서 몇 개 안 되는 큰시암, 약수 중에 약수였던 디다 이 말여. 어찌서 약수냐고? 앞산이며 그 우그 황방산 자락 어디든 묘가 없는 곳이 없어. 긍게 앞시암 물은 거그 모든 묏자리를 통과혀설랑 정갈허게 갈앉은 물이다 이 말여. 이것이 약수가 아니고 무엇이것냐잉. 근디 앞산이 남자 성기를 빼닮은 형세라는 디 문제가 붙었다 이 말여. 앞시암을 시방 자리로 옮기고 만 그때부텀 동네가 사달이 난 게여.”

  어르신은 다시 말을 끊었다. 시늉으로 만 남은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담배 연기에 갇혔다 바람결에 풀려난 당신의 말씀은 방바닥에 깔리고 있었다. 막걸리라도 사와서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지만 그럴 게재가 아니었다. 어르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돌이킬 수도 없다는 듯이, 헛바람 새는 입술을 자꾸 씰룩이며 말씀에 뜸을 들이더니,
    
  “앞시암을 시방 자리로 옮기고 나서부터 동네에 상피가 붙은 거여. 앞산이 좆이라는디 하필 좆 끄터리에 앞시암이 떠억 앉었으니 안 그럴게여? 자네 상피붙은 게 머신중 줄 알어? 근친상간近親相姦이 났단 말이네, 근친상간. 양반동네에 이런 흉한 일이 생겼으니 관아에서 으당 조처를 허지 않었것어? 관졸들이 창검을 들고 상피 붙은 당사자를 끌어냄서 피붙이들까장 물고를 냈다고 허등만. 당장 동네를 폐廢혀버린 것은 말헐 것도 웂고. 여그 살던 양반들은 묘만 남겨두고 딴 디로 이사들을 갔고.”

  불륜을 저지른 남녀가 멍석에 말려 몽둥이질에 초주검이 되는, 피 냄새 엉겨 붙은 정경이 퍼뜩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옛 시절로 끝내 못 돌아간 어설픈 사극처럼 기와집에 불태워지고 관졸들이 창검을 들고 동네 사람들을 내쫓는 장면도 떠올랐다. 풍수지리 속에 감춰진, 삼강오륜의 행간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인간의 불순한 욕망이 이빨을 드러내놓고 나를 희롱하는 것 같았다.

  어르신 얘기는 여기서 끝이었다. 더 알라고 하지 말라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공손히 절을 올리고 그 집을 빠져나온 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사람의 건강한 체취가 간직된 얘기, 동네의 건강한 내력을 쓰고 싶은 욕망은 어디로 가버리고 불순한 성욕이 일시에 내 머릿속을 매음굴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남자의 성기를 닮은 앞산의 형세와 그 성기 끄트머리에 여자 성기처럼 샘이 새로 파졌기 때문에 동네에 근친상간이 나고 동네가 작파되었다는 얘기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쓸데없이 오해받을 짓 하지 말라던, 금기를 넘고 싶었던 욕망은 어느 시대든 어떤 동네에서든 근친상간이란 말 가깝게 자리하지 않은 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계된 대부분의 말이 그렇듯 근친상간이란 말이 생기면서부터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형상을 그려봤을 것이고 근친상간이라는 글줄의 어간에서 죄책감과 쾌감이 함께 두근거렸을 것이었다.

  이 두 개의 상반된 두근거림은 그 어떤 것으로도 잡아낼 길이 없고, 잡아내어 몇을 치도곤낸다 해서 없어질 성질의 것도 아닐 것이었다.

  동네의 유래를 찾기도 전에 동네가 폐廢해지게 된 앞시암에 발목이 잡힌 나는 새벽 끗발 못 보고 죄다 털린 노름꾼처럼 입맛이 썼다. 윗거티, 아랫거티, 건너물…. 그래도 나는 텅텅 빈 집들이 함부로 까뭉개지는 동네를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헤맸다. 동네의 내력을 파볼만 한 꺼리를 찾았다. 하지만 없었다.

  텅텅 빈 동네가 까뭉개져 폐허가 되어가는 내 고향엔 중장비들이 내지르는 굉음만이 먼지처럼 날리고 있었다. 오래 된 묘를 이장한다는 곳을 여러 번 가보았어도 버드랑죽의 천 년을 증명할 얘기나 녹슨 패물 따위는커녕 거무튀튀하게 흙으로 범벅된 젓가락 한 짝도 찾을 수 없었다.

  근친상간이 나서 동네가 폐해졌다던 수백 년 전의 그때보다도 더 잔인하게 동네는 콘크리트더미에 묻히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66


[2019-01-30 18:05:5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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