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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4.두목(하)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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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4. 두목 (하)

  문제는 겨울이었다. 닭서리 토끼서리도 한두 번이지 그것도 자주하면 꼬리가 잡힌다는 것이 두목의 생각이었다.

  물론 닭이나 토끼를 잡아오면 좋긴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들의 위치가 노출되기 십상이라는 것, 타동네 것도 아니고 제 동네의 빤한 것을 드잡이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도리가 아니라는 것, 닭털이나 토끼가죽이나 이것들 배 가르고 꺼낸 내장을 아무리 감쪽같이 없앤다 하더라도 거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 동네 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허구헌 날 다섯 놈이 뭉쳐 다니니 우리들 짓이 아님에도 우리는 이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던 것이다. 준호 형네 둠벙은 네 번도 더 품어먹었고, 아홉 마지기 봇도랑도 사정이 마찬가지니 물고기 씨가 말랐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눈 덮인 황방산에 갈 수도 없었다.

  창밖엔 펑펑펑 눈이 또 내리고 열여덟 살 된 겨울밤은 길었다. 주어진 조건 하에서 삶을 즐기자는 게 우리의 좌우명인데 그날 밤은 삶을 즐길 아무것도 없었다. 두목도 별 수가 없는지 올 겨울은 초상도 안 난다잉? 이러면서 가보패를 떼고 있었는데 몇 번을 다시 떼어도 패가 영 떨어지질 않았다.
    
  두목은 패를 짝짝 뒤엎어 버리더니 구판장에 갔다 오겠다면서 나더러 김치 한 포기를 꺼내오라고 했다. 막걸리 대접도 챙겨두라고 했다. 순간 우리 넷은 어리둥절해서 “너, 돈 있냐?” 이렇게 치어다봤고 두목은 걱정 없다는 듯이 방문을 쾅 닫았다.

  나는 두목이 시킨 일을 무시하고 뒤를 따라나섰다.구판장 문을 열고 들어선 두목은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나더니,

  “우리 아버지가요, 두부 반 판하고 막걸리 다섯병 그리고 거북선 담배 한 보루를 치부책에 적어놓고 가져 오라시는데요.”

  이러지 않는가. 아저씨는 두말도 않고 그러라면서, 공부는 잘 되느냐면서 이것들을 친절하게 챙겨줬다. 두부 반 판이면 10모는 될 것이다, 막걸리 다섯 병에 그 비싼 거북선 담배 한 보루, 이거 보통 수지맞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좋아해야할 일이냐,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냐, 아버지 성함을 팔았으니 훗날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그러나 이런 싸가지 있는 생각은 뒤에 일이었다. 이것을 들고 신바람내서 골목을 걷는 두목과 나. 방문을 여니 우리의 손에 들린 들림새를 보고 감격해 마지않는 덕규와 재운과 노규. 아아, 이게 웬 일이냐, 우리는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단 말이냐.

  포기째 꺼내온 김치 가닥을 내어서 두부에 싸먹었다. 우리가 열여덟 살인데, 옛날 같으면 장가가서 아들딸을 보았을 나이인데 김치에 두부만 싸먹어서야 되겠느냐, 막걸리도 한 잔 걸쳐야 하고, 그리고 어른답게 담배도 한 대 피워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다섯의 마음은 똑 이랬다.

  “저 건너 점쟁이 딸은 이쁜치 허느라고 시방도 삐친 것같이 허고 댕긴다냐, 서독으로 공부하러 간 성숙이는 집에 연락이 오고? 서리라는 서리는 다 해봤는디 쫄깃쫄깃 차지게 앵긴다는 몸띵이서리는 언제 해본다냐잉?”

  주파수 안 맞는 라디오처럼 뒤죽박죽 쏟아지는 말들이 말들을 감당 못하고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당장 이 일이 탄로가 나서 불벼락이 떨어진대도, 그래서 우리의 해장구인 이 방에 소불알 같은 자물통이 채워진대도 그 밤의 행복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산 넘고 물 건넌 가지가지의 소문과 그럴싸한 뻥들이 순 날것으로 혀를 날름거리며 두부김치에 둘둘 말리고 막걸리처럼 꿀떡꿀떡 목을 넘어갔다. 어떤 괴로움이 우리의 목을 조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살맛이 났다.

  그 해 겨울밤 두목은 닷새가 멀다 하고 자기 아버지 함자를 구판장 치부책에 적어드리며 술담배와 두부를 사다 먹도록 길을 텄고, 그 일을 우리에게도 시켰다. 점수 내기 고스톱을 쳐서 꼴등한 놈이 두목 아버님 함자를 구판장 치부책에 적어드리고 물건을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그날 밤 노규가 꼴등이었다. 녀석은 지체 없이 구판장에 갔고 우리는 노규의 양손에서 거들먹거릴 들림새를 기다렸다. 그런데 구판장에 갔다 온 노규의 얼굴은 찬 물에 제 고추가 얼어버린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몇 번을 묻자 두부며 막걸리, 거북선을 양손에 들고 막 나오는데 두목의 아버님께서 구판장에 들어오시더라는 것이다. 아차, 어째야 되나 망설일 여유도 없이 인사만 꾸벅하고 도망치듯이 구판장을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두목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를 단단히 각오한 듯 입을 꾹 다물고 말을 끊었다. 그러나 단 3분도 안 되어서 두목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야, 기왕에 사온 거니까 맛있게 먹고 혼나버리자, 어서 먹장게.”

  이러는 게 아닌가.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두목의 배짱에 기대어서 막걸리 대접에 입술을 대기 시작했다. 속없이 두부김치는 맛나게 목구멍을 넘어 갔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귀는 온통 대문께 쏠려 있었는데 웬일로 두목 아버님께서는 귀가 시간이 늦으셨고, 막걸리 똥배짱에 기댄 우리의 취기는 아버님의 발걸음소리를 끝내 놓치고 말았다.

  아침이 되었다. 친구들은 집으로 튀어버리고 나와 두목만 밥상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아니 평소와 똑같으셨다. 모름지기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놀려고만 말고 뭔가 계획을 세워서 한 가지씩 실천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은 밥상에 앉을 때마다 하시던 말씀이므로, 이제 무슨 말씀인가가 나와야 했다.

  어젯밤 구판장 아저씨에게 다섯 놈이 돌아가면서 당신 이름을 팔고 겨우내 외상으로 술담배를 사다먹었다는 얘기를 들으셨을 터, 곧 눈앞에서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었다. 세상 천지에 술담배 사먹으려고 아비 이름을 파는 놈들이 어디 있냐고, 그 서글서글하신 눈매에 서릿발을 달고 천둥소리처럼 꾸짖으실 것이었다.

  이 일은 어른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두목 아버지께서는 공부도 많이 하셔서 동네 큰어른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존재감을 술담배로 바꿔먹은 망동, 거기에 당신의 큰자식이 끼어 있다는 사실은 교단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의 자존심까지 뭉개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떨어지나, 불벼락은 언제 떨어지나 애타게 기다리는 두목과 내 마음도 모르시고, 당신께서는 끝내 말씀 없이 수저를 놓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그때 우리 나이 열여덟을 읽고 있으셨을까. 술은 어른께 배우는 거니까 그렇다고 치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고개를 외로 꼬고 밤꽃내들을 피워 올리느라고 목단꽃 그려진 이불 홑청이 한 때를 못 참고 흐물거리는 사정을 짐작하셨을까.

  시내에 나가서 못 된 짓만 일삼는 그런 촌뜨기들과 우리 다섯은 거리를 두었지만, 기껏 동급생들 주머니나 털어먹는 그따위 양아치들 패에 섞이지 않은 우리가 기특해 보이셨겠지만, 끝내 공부를 멀리하고 고고박자와 디스코 박자에 사생결단하듯 덤벼드는 우리의 근본 없는 춤사위도 넉넉히 이해하셨던 것일까. 그렇게 무작정 세상으로 튕겨나가고 싶었던 18세의 욕망도 꿰뚫어보셨을까.

  해방구로 돌아온 두목과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차라리 불벼락을 맞는 것이 속은 더 편할 것이라는 속내를 낑낑대고 있었다.

  두목은 그 날 이후 장발머리를 빡빡 밀었다. 삭발한 머리가 상고머리를 넘어설 때쯤 대입 검정고시를 끝내고 모악산 코밑에 붙은 수왕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대입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내 고향 동네에서 처음으로 수도권 4년제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3년 동안 골머리를 앓아도 공부해도 갈똥말똥한 대학을 몇 개월 만에 끝내버린 것이었다.

  머리 좋다는 치들을 더러 봤지만 민규만큼 머리 좋은 놈을 나는 아직도 본 적이 없다. 한번 외운 것을 잊어먹는 법도 없었지만 두목은 수학문제조차 눈으로 풀었다. 연습장에 낑낑대며 풀어도 번번이 틀리는 정답을 눈으로 맞혔다.

  창밖에 펑펑 함박눈이 내린다. 두목이 머리는 좋았지만 시험문제에 안 나오는 지식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공부 기계가 아니었다고, 일반인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 재벌들이나 기득권 세력의 마름밖에 안 되는 창백한 지식인도 아니었다고 펑펑펑 함박눈이 쏟아진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백번 천번 재미있다는 지점에 두목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도 두목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삶을 즐기는 ‘삶’의 행위가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법이나 돈보다도 먼저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두목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가 정해 놓은 삶의 방향 - 공부가 적성에 안 맞아도 학교에 가야 하고, 직업을 가져야 하고, 보험을 들어야 하는 - 이런 삶에 길들여질수록 기계와 물질에, 거대자본에 노예가 된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소주 몇 잔 걸치니 두목의 방 생각이 간절하다. 엄니께서 동치미 뜨려고 장독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방에 놔두고 온 우리 다섯 놈은 오늘 밤도 창틀에 꼬불쳐둔 거북선 꽁초를 나눠 피면서 뭔 껀수를 잡으려고 골몰할 터이다.

  1등만 알아주는 세상을 거절했던, 사람이지만 공부기계에 불과한 것들이 판치는 세상과도 관계없었던 우리의 해방구에도 펑펑펑 함박눈이 쏟아질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  jbpost2014@hanmail.net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17

[2019-01-29 21:33:0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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