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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44. 김기택-소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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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44. 소- 김기택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말을 함부로 하면 자신이 함부로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경구를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돈과 물질이 사람의 소통을 가로챘으므로 사람들은 아예 말수를 줄였다고 적어야 옳지 싶다.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김기택, 「소」, 전문.


   뭔가를 말하는 듯한 소의 눈, 화자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어 안타깝다. 소 자신도 눈동자에 맺힌 말을 꺼낼 도리가 없다는 듯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그럴 때마다 소의 눈은 그렁그렁해질 것 같다. 소도 이런 자신이 서러워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기도 하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안 한다. 말이 눈동자 속에 갇힌 것은 소의 사정이지만 시는 되새김질이란 말문을 튼다. 소의 겉모습을 통하여 속내를 짐작하는 시의 사유가 인간 세계로 번지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말하고 그것을 저 혼자 듣는 일은 이제 사소하다. 반편이가 아닌 한 자신이 문명에 소외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첨단의 기계와 자본으로 똘똘 뭉친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뒤집어씌워 자유를 박탈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이는 없다. 절대 빈곤에 시달렸던 때가 되레 인간적 정이 두터웠다는 것도 사람들은 잘 안다.

  절대빈곤의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러나 그때의 두터운 정이 그리운 삶의 이율배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새김질일 수도 있겠다. 맘먹고 길을 찾아보기는커녕 맘 놓고 길을 잃어보지도 못한, 획일화된 징역살이를 짓씹으며- 숫제 말수를 줄인 당신 눈에 오늘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사에 맞먹는 수천만 년을 가둔 소의 눈을 두고 “오, 이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라고 빗댄 언어 맵시가 아침햇살처럼 빛난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4










[2020-08-03 19:16:3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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