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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시인,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토닥토닥-김영춘 새시집 서평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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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시인,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토닥토닥'
                   입력 2023-11-12 15:49  수정 2023-11-12 15:49


김영춘의 새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 서평


오늘에 닿는 김영춘 시의 눈금이 살갑다. 일상에 자리한 여러 현상을 고구마 순 김치, 보리알, 탱자나무 울타리와 채송화 등의 온기로 감싸는 시의 촉수는 여유롭고 정답다. 이는 <나비의 사상> 이후 10년 만에 내보인 그의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애지, 2023.10.10.)를 이르는 말이다.

뭔가 바라는 바가 “제대로 되는 순간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한꺼번에 제각각으로 누워버리는 양파대 앞에서/ 쉽게 걸음을 옮길 수 없”(「양파밭에서」)는 시인. 멋진 시를 쓰기보다는 바른 교육 현장을 이뤄내고자 심혈을 쏟았고 문명적 색감의 언어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참된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목소리에 더 밀착되었던 김영춘 시인. 그는 식당 아낙이 텃밭에서 솎아온 어린 상추를 비닐봉지에 담아 내놓자 “잘 찾아보면 이런 상추가 있긴 있는데/ 이런 여자의 마음은 어딜 가도 없는 같어”(「덕유산 돼야지」)라고 따뜻한 국물처럼 말을 건넨다.

술집에서 친구의 손을 잡아가다가 “눈앞의 손목이 마치 어디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 같”(「손목」)다는 구절은 이별이 흔해진 모두의 오늘이 서글프다. 늙은 부부의 가을걷이를 보면서 우리 삶의 끝도 콩대며 깨를 털 듯이 “자근자근했으면 좋겠다”라는, 두 노인의 등에 내리는 햇살처럼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토닥토닥”(「저물녘」)했으면 좋겠다는 시행에 문득 적막감이 깃든다. 이번 생(生)의 끝을 누구에게 맡기고 싶다기보다는 우리 삶의 마무리가 두 노인네처럼 맑디맑기를 바라는 시의 울림을 얻기 때문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전동성당이 있고 경기전이 있고 동학혁명기념관이 있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를 죽인, 떼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현장에서 김영춘 시의 영성(靈性)은 빛난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그들의 후손인 우리까지 노란 은행잎에 기댄 시절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시는 “가을은/ 조선의 바깥으로까지/ 길을 낼 수 있기 때문”(「산책」)이라는 구절에 도달한다. 조선의 바깥은 어디일까. 모두가 꿈꾸는 ‘길’이 있기는 한 것일까. 시의 영성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겠지만 모질기조차 한 역사의 숨결을 겨냥한 시의 문법이 아슬하다.

돈과 긴밀하게 소통되는 문명이나 기계적인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않는 내면으로 침잠하고 싶은 고독이 요번 시집의 일면이라고 말해도 되겠다. 변기를 고치는 아저씨의 「물 샐 틈 없는 인생」이며 시인의 소년기를 거슬러오는 “쫑쫑쫑 썬 아욱국”(「아욱국」) 이면에 자리한 시의 고독. 경마장 근처에서 늙어가는 말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싸락눈이 서걱이는 그런 시간이었다”(「서성였네」)라고 맺는 곡진한 언술은 몇 줄로 적을 수 없는 시의 고독이 가을밤처럼 깊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어느 하루도 바람 그친 적 없”었다는 「만돌 갯매꽃」은 모두의 하루로 번지는 미학을 획득한다. 시인의 내면이 어머님의 도마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닭장 속 달걀이 사람의 손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짚어보면서 “다정한 것들이/ 서로 헤어지는 사연을 생각하며 살아온 날들이/ 시 쓰는 일의 절반쯤 된다 하여도”(「떠나는 일에 대하여」) 그리 억울하지 않다는 시인의 사유. 김영춘의 시정신은 오늘도, 오직 사람을 향하고 있으리라.


이병초 시인은

1998년 <시안>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이 당선됐다. 시집으로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이 있고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가 있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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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일보 https://www.jjan.kr/article/20231112580088









[2023-11-13 09:21:1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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