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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랑토앙케>를 읽고
작성자 : 鄭洋  (홈페이지)


<암시랑토앙케>를 읽고

1942년생 정양 시인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우리말과 남도 사투리를 특유의 구수함과 애뜻함으로 표현하여 고향 생각과 죽마고우 친구들 얼굴들이 떠오르게 합니다. 조금씩 읽어가다 보면은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사뭇 애잔하기도 합니다.
시에는 나그네 치고는 목청이 좋고 흥이 넘치던 ‘땜쟁이’가 나온다.
<구녁 난 냄비 때워유
솥단지 금간 디 때워유
내오가는 금간 디도
소문 안 나게 감쪽가치 때워드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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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예편네 바람 구녁도
다시는 바람 안 나게
야무지게 때워드려유
엉겁겨레 빵구 난 숫처녀도
암시랑토앙케 때워드려유 ~>

‘암시랑토앙케’는 남도 사투리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언가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무언가 있었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은 듯
무언가 있을지언정 아무 거리낌 없는 듯 자연스럽게

요즘은 뉴스를 보면서
암시랑토앙케 살기가 쉽지 않다

행간에 넘나드는 훈훈한 정분이 넘치는 ‘도둑놈’을 보면
<외동딸 시집보내고 혼자 사는
여산댁 외딴집에 도둑이 들었다
---
아까부터 숨죽여 지켜보던 여산댁이
“도독이야 도독이야”연거퍼 큰 소리로 내질렀다
~“하따, 간 떨어지거따 이녀나”
~“어따대고 년짜냐 이 도동노마 너 멧살 처머건냐?”
~“확 쥑여뻐리는 수도 이씅게 꼼짝마러 이녀나”
---
~“도독질 당헐라고 잔뜩 지둘려떵만 뭔 딴소리여?”
~“암만혀도 그 도독질 한 번 더 혀야 쓰거따”

‘하따, 어따대고, 멧살 처머건냐, 이씅게, 지둘러떵만, 암만혀도’
이런 사투리들이 시골 밤의 서사에 농담(濃淡)을 깊게 한다.
우수 경칩이 지나
봄이라지만
아직도 몸과 마음이 춥다.
정양 시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몸이 추울 땐 불을 쬐고
마음이 추울 땐 사람을 쬐고
영혼이 추울 땐 시를 쬐라.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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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人 의자   폴쎄


질 게 뻔해도/정양

하수들이 세상에 남긴 인생 노래
정양 시인에게 시는 예술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 나타난 삶은 예술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를 넘어선다. 정양 시인은 쓸 수 없는 것은 쓰지 못하는 법이고, 써서는 안 될 것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에게 시는 꼭 써야만 하는 것들이고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 더는 못 감출 상처”(「단풍」)들이고, “목숨 걸린 걸 알고 저렇게 / 악착같이 맴맴거리”(「매미소리」)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는 우리의 삶이 “남겨야 할 말이 꼭 있다는 듯이 / 마지막 잎새 하나 창 밖에 / 이 악물고 대롱거”(「마지막 잎새」)리는 것들이다. 이처럼 정양 시인은 삶이 시에 앞서고 시가 삶의 잔여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모든 삶은 결국 죽음에 귀착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서 비롯된다.

      나는 가끔 티비 프로그램 중
      장기 두는 걸 즐겨 본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고수일수록 질 듯한 판은
      서둘러 포기해버리고 하수일수록
      질 게 뻔해도 끝까지 둔다

      무슨 의로운 일에 목숨 걸어야지 싶어
      늙어 병들어 죽는 걸 부끄럽게 여기던
      고수인 척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거니

      이제 와 돌이켜보면
      질 게 뻔해도 끝까지 두는 게
      세상에 대한 최선의 예의인 것 같다
      최선의 예의일지 마지못한 도리일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걸 이제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질 게 뻔해도 끝까지 두는
      끝까지 시달리는 하수들의 회한이
      장기판마다 새삼 되씹힌다
      ―「질 게 뻔해도」 전문

정양 시인은 “질 게 뻔해도 끝까지” 살아보는, 그래서 어쩌지 못하고 삶에 “끝까지 시달리는” 하수임을 자처한다. 시는 그런 하수들이 세상에 남기는 노래이다. 그렇게 남겨진 시편들에는 하수의 삶이 아니라 ‘시달림’이 새겨져 있다. 때문에 정양 시인의 시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대신 명사로서의 인생이 아닌 동사로서의 시달림을 찾아야 한다. “누굴 그리 보고 싶은지 // 빗방울들 맺혀 그렁거린다”(「봄비」)고 할 때, ‘그렁거’리는 그 미세한 떨림이 바로 시달림의 순간들이다. 그래서일까? 시집 『암시랑토앙케』를 읽고 나면 가벼운 미열에 시달리게 된다. 그 미열에서 헤어나면, 시집을 읽기 전과는 분명 다른, 삶의 새로운 기운을 충천한 것처럼 마음이 맑고 가뿐해진다.   정양 시집 <암시랑토앙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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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15:44:5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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