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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1. 누에에게 밥을...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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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누에에게 밥을... <이현옥의 타박타박>


이 꿉꿉하고 무더운 여름이 가기 전에, 뽕나무의 뽕잎이 몽땅 사라지기 전에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일이, 유년의 한 토막이, 내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10여 년 전 여름 초입이었다. 그날 동생이 여느 산에서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를 털어오지 않았다면 그물그물한 누에들이 뽕잎을 슥슥슥 갉아먹던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내가 오지게 나는 오디, 검붉은 열매에 들어붙어 있는 벌레들과 어린 뽕잎들을 대체 어떻게 골라내겠다고 탈탈 털어왔단 말인가. 거미줄보다도 촘촘하게 희뿌연 막으로 덮여 있는 저것들을 어떻게 처치하자는 말인가.

옥상의 평상에 부려놓은 고것들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내 머리를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오디를 골라낼 생각은 하지 않고 나는 그때 일을 말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었다. 동생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한참을 듣고 있던 남편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무색해진 나는 혼자 상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자 담임선생님은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여쭤보고 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당연히 여자가 초등학교 졸업장이면 됐지, 더 배워서 어느 짝에 써먹을 거냐,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이니 다소곳이 집안일 거들다가 시집가면 된다고 일장 훈계를 하셨다. 큰오빠 학비도 빠듯한 데 돈이 나올 구멍이 있느냐. 이 어미를 내다 판 돈으로 학교에 가라며 협박을 하셨다.

내 입은 댓발 나왔고 심사가 보통 꼬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이래 뵈도 나는 황소 고집하는 아이였다. 중학교에 꼭 가고 말겠다, 삼사일동안 떼를 쓰고 울기도 해봤으나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된통 풀이 죽어 선생님께 이 말을 전한 어느 날 급기야 그 분은 가정방문을 오셨다. 지금은 여자들도 배워야 한다. 중학교를 꼭 보냈으면 좋겠다. 정 사정이 그렇다면 본인이 입학금을 얼마라도 보태보겠다. 일단 입학을 하고 나면 무슨 수가 생길 것이다.

배구를 가르치면서 대나무 뿌리로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던 무식한 선생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을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더니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다. 생각을 좀 해보겠다. 그리고 선생님을 배웅했다.

옛일에 대한 회한에 잠겨본 적이 많이들 있을 것이다. 부모 밑에서 걱정 근심거리가 없었다면, 그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상업고등학교가 아니라 인문계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더라면, 대학 다닐 적에 시위대 뒤꽁무니를 쫓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좀 더 고분고분한 사람이었다면, 옆에 있는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때 남편이 빚보증을 서지 않았다면…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이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어떤 삶을 펼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는지 어머니는 나에게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라며 일자리를 얻어 오셨다. 이웃 동네 누에치는 집에 가서 누에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었다. 중학교 입학금 낼 때까지 1~2달 정도 일하면 얼추 학비에 보탤 수 있을 것 같아 앞뒤 가릴 틈도 없이 나는 선뜻 대답했다.

돈도 어른들만큼 쳐 준다고 하니 한층 고무되었다. 그런데 일하는 시각이 문제였다. 밤 12시경부터 새벽 4시 정도에 끝나는 일이라고 했다.

일꾼들로부터 현장에서 그 일 인계를 덜컥 받던 날부터 나는 온갖 걱정에 휩싸였다. 일단 누에는 징그럽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했다.

일꾼들이 잘게 썰어놓은 뽕잎은 눈을 딱 감거나 실눈을 뜨고서라도 눈깜땡감 뿌려줄 요량이었다. 2시간마다 뽕잎 갉아먹는 소리는 목화솜으로 귀를 틀어막으면 될 성 싶었다.

문제는 한밤중에 오고 가야 할 논밭두렁이 문제였다. 키 큰 옥수수와 수숫대들, 쥐와 살쾡이들. 바람이라도 불지 않았으면, 차라리 달빛이 없었으면, 내 그림자에 내가 놀라 자빠지는 일은 없었으리라.

짐승들도 아예 보이지 않을 터이니 덜덜 떨지 않았을 것이고 밤길과 새벽길을 오가는 내 심장이 그렇듯 오그라드는 일은 없었으리라.

방바닥을 빼고 서너 단 시렁 위에 얹어놓은 채반에는 누에들이 빼곡했다. 내가 뿌려준 뽕잎을 누에들은 사생결단하듯 먹어 치웠다. 눈을 뜨고서는 차마 그 장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한쪽 구석에서 제아무리 솜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들렸다. 이상야릇한 냄새뿐만 아니라 눅눅한 공기까지 가세하여 콧구멍까지 쥐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집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해서 몸서리를 쳤다. 꼬리에 꼬리를 치는 상상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오줌싸개 짓이 웬만해졌는가 싶었는데 또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가을에 그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나름대로 잔꾀가 떠올랐다.

누에 밥을 서너 번 주고 난 후 집으로 곧장 돌아오지 않았다. 누에와 함께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붙이거나 방문 밖 쪽마루를 오가며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돌아왔다.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내가 누에 밥을 주러 다녔던 것을 동생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슬그머니 사라졌던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우연찮게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가난해서 다들 고생했지만 당신은 그런 일자리를 구해준 적이 없다고,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별걸 지금까지 담아두었다면서 벌컥 화를 내셨다.

나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럼 내가 없던 일을 만들어 냈겠는가.” 엉엉 울고 말았다.

동생이 오디와 뽕잎을 털어오지 않았다면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 몸속 어딘가에 박혀 있을 누에들이 내 몸 밖으로 기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런 일들이 없었다면… 말이다.

과연 내 기억은 모두 옳을까.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보기 싫은 것은 눈을 딱 감아버리는 게 정말 바람직한 행동일까. 겨우 이렇게 살자고 등골 오싹한 그 밤길을 오가며 간장을 졸였던 것은 아니지만 떠올리기 싫은 상처는 어쩌자고 긴긴 세월 발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가.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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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883








[2021-09-06 09:03:1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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