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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0-3. 밭 가운데 외딴 집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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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밭 가운데 외딴 집 <이현옥의 타박타박>


마음이 심란할 때 마루 끝 나무기둥에 기대고 앉아 고산 ‘안수사’의 나무와 불빛을 바라보면서 만지작거렸던 마루와 기둥의 촉감은 어떠했던가. 밥 태워 먹었다고 어머니께 꾸중을 듣고 부뚜막을 손가락으로 드드득 긁다 나가서 우물에다 얼굴을 비쳐봤던가. 장독대 뒤 꽃단추(=골단추=골담초) 톡톡 벌어지는 모습을 보았던가. 덜 여문 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던가.

텅 빈 마당 가운데 퍼질러 앉아서 나는 냇가와 신작로에서 주워 온 자잘한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밖에서 뛰놀고 있을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날씨가 서늘할 때면 등짝에 내려앉는 햇살을 좇아 마루와 토방을 오갔다. 저녁 거름에는 마당에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고 난 뒤 특유의 흙내를 킁킁 맡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멍 때리며 늘어져 있는 거실은 아마도 편평한 마당쯤 되지 않을까 어림잡아 본다.


우리 동네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집은 학교 가는 길목 끄트머리였고, 뒷동네 사람들에게는 냇가와 앞산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이 외딴 집 앞에서 내 친구들은 아침마다 학교에 가자고 소리를 쳤다. 사립문 너머, 혹은 울타리 사이로 우리 집안 동정을 살피기도 했다.

오빠들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거나 저음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면 친구들은 몸을 바싹 움츠리고는 달아났다. 그물을 쳐서 잡은 물고기를 빛바랜 알루미늄 바께쓰에다 반절 이상을 부어 놓고 가시던 둘째 작은아버지가 지나다니는 길목이기도 했다. 우리들을 향한 안쓰러운 마음을 그분은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우리 외딴집과는 영 딴판이었던 할머니 댁은 기와지붕에 하얀 회벽으로 지어진 한옥이었다. 주춧돌 위 처마를 받쳐 주고 있던 아름드리나무 기둥의 촉감을 나는 유독 좋아했다. 기름 먹여 길들여진 진갈색의 반들반들했던 마루 역시 잊을 수 없다.

할아버지의 초상 기간은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3~4일 내내 나는 그 기둥에다 얼굴을 부비거나 손바닥으로 마루를 만지작거리며 슬픔을 달랬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검버섯 가득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던 느낌으로 말이다.

일가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은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 위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울다가 웃다가 술에 취해서 연신 떠들었다. 내 슬픔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속에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들이밀었다. 화투판을 벌였다.

윗방으로 밀려나셨던 할아버지는 죽은 후에야 안방 아랫목으로 내려 오셔서 병풍 너머 관 속에 누워 계셨다. 나는 슬픔을 삼키며 이 요상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 혼자만 깊은 설움에 잠긴듯했다.


내가 학교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에 맞추어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당신이 만든 싸리빗자루를 손에 쥐어 주고, 할머니 몰래 참외 두어 알과 옥수수를 책보에 싸 주시던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어느 순간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저 나무 기둥과 마루를 쓰다듬어야 했다. 맨들맨들하면서 거칠거칠한 촉감이 나를 만져주는 것 같았다. 하여 내가 만약 건축과 공간에 관한 글을 쓰게 된다면 ‘촉감이 주는 위로’와 ‘내 마음을 만져 준 나무’는 반드시 목차에 포함될 것이다.

사실 흙과 돌멩이, 풀과 꽃들도 나를 기쁘게 해 줬었다. 우리들의 놀잇감은 거의 자연에서 온 것들이었으나 그 중에서도 갈색의 나무기둥과 마루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지금도 내가 오래된 한옥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기둥과 마루에게서 생명을 느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상당 부분 난해해 보이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이라는 책을 찬찬히 읽다 보니 쉬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의 책 ‘제 1장 - 집’에서 발췌해 보았다.

“집이란 세계 안의 우리들의 구석이다. 우리들 최초의 세계이다. 하나의 우주이다./ 집의 추억들을 환기하면서 우리들은 꿈의 가치들을 한데 모은다./ 집은 몽상을 지켜 주고, 몽상하는 이를 보호해 주고,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롭게 꿈꾸게 해 준다./ 집은 하늘의 뇌우와 삶의 뇌우들을 거치면서도 인간을 붙잡아 준다. 그것은 육체이자 영혼이며-중략/ 꿈들의 집적체인 것이다. 옛날 그것의 구석진 곳들은 모두 하나하나 몽상의 장소였다. 그리고 장소는 흔히 몽상을 특수화한다. 우리들은 거기서 특수한 몽상의 습관을 익혔던 것이다. 우리들이 홀로 있었던 집, 방, 곳간은 끝없는 몽상…의 무대를 제공한다.”

쓰러져가는 밭 가운데 외딴 초가집 곳곳에서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며 꿈꾸며 오늘의 내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면 과장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다. 그 꿈들이 허무한 꿈으로 끝났을지라도,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가장 즐겨했던 놀이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내가 집을 짓게 된다면 천정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조명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여백을 두고 싶다. 그 구멍들에서 내뿜는 부신 불빛들이 나의 오래된 습관을 앗아갈 것 같아서다.

등잔불과 호롱불빛 아래,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던 작은 알전구가 만들어낸 그림자들을 보며 나는 온갖 그림을 그렸었다. 쥐오줌과 빗물이 그려낸 얼룩과 희미한 불빛의 조합은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했다.

할아버지의 옆얼굴과 할미꽃, 하늘의 먹구름, 뱀과 토끼, 오빠들의 모자, 포도송이 등을 찾아냈다. 방바닥에 누워서 내 몸의 방향을 위아래로 좌우 모서리로 바꿔가며 밑그림을 좇아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만의 재미를 발견했던 공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 집에서 크고 작은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 단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사연이냐고 굳이 묻지는 마시라. 내 가슴이 무덤덤해지는 그 날, 감정의 기복이 정제되거든 옛날 얘기하듯 들려주리다.

숱한 무더위와 추위를 견뎌낸 밭 가운데 외딴 집을 조만간 떠날 날이 올 것 같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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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m.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843








[2021-08-17 10:59:1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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