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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 실린 시 2편
작성자 : 전홍준 


+분화하는, 진화하는 삶의 시를 찾아서-  

그만 일어나거라 김 빨러 가자
아버지와 나는 목도를 메고 바다로 간다
방파제 끝에 동구리*를 내려놓고
아버지는 물 한 동이씩을 붓는다
나는 고무래질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휘젓고 비틀고 누르고 뒤집는다
물 불은 김은 넘치게 출렁거리고
출렁거리다 넘치면 아버지는 나를 탓했다
날은 춥고 귀 시리다
젖은 김 들고 겨울 볕을 따라가면
먼저 도착한 겨울 볕이 발을 옮긴다
햇볕 따라가며 떼어 낸 김들을
저린 콧등에 침 발라가며
온가족이 다지금 한 뭉치씩 갠다
오금 저리며 갠 숫자를 깜박깜박 잊어먹어
하루 종일 더하고 뺀 김 다발을
아버지는 조합 띠지로 밤이 깊도록 한 톳씩 묶었다

*동구리: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원통형의 통

- 전홍준 「겨울밤」 전문, 『눈길』

안면도가 고향인 전홍준 시인의 성장사이다. 한 톳의 김이 어떻게 우리의 입속에 오는지를 아는 이 흔치 않을 것이다. 어릴 적 우리 마을 사람들도 김농사를 했다. 바닷가에 김이 달라붙도록 지주를 세우고 채취해온 김을 씻고 일일이 손으로 발장에 떠서 볕에 말렸다. 김이 나는 때가 가장 추운 겨울이라 바다에 나가 김을 걷는 일도,뜨는 일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나는 옆집에서 바람에 떨어져 날라 오는 김을 주워 먹기도 했다. 물김을 잘 씻어 식초와 약간의 양념을 해서 먹으면 목이 미끄럽게 시원하니 맛있다.농촌이나 어촌이나 아이들도 노동력이었다.일 못하는 아이들은 늘 지청구를 먹었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것을 아니까 아이들도 궁시렁거리며 참고 일했다. 어려서부터 일을 통해 생활을 느끼고 부모들의 고행을 들여다보면 일찍 철들기도 했을 것이다. 김은 백 장 단위를 한 톳이라 한다. 백 장을 정확히 맞추다 보면 졸립기도 하고 딴생각도 났을 테니 그러면 다시 세어야 하는 것이다. 이 겨울밤이 어떠하신가. 시적인 기교나 어휘를 동원하지 않지만 그냥 애잔하고 애틋하다. 우리 고향에는 ‘총올치’라 불렀던(아마도 칡 껍질을 가공해 만든 벽지 재료인 걸로 안다) 줄거리 잇는 일을 겨울의 소일거리로 삼았는데 나와 여동생들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물기에 젖은 줄거리를 손이 곱아 화롯불을 쬐며 잇고 또 잇고 꿰미를 꾸던, 오금 저리고 지루하던 추운 겨울날이 생각난다. 생활이란 이처럼 오금 저린 것, 그리고 혼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구멍 없는 그물 같은 것이었다.

두 번째 항암치료 후
아내는 긴 생머리가 움푹움푹 빠지자
아예 머리를 밀고 왔다
착한 스님 한 분이 오셨다고 서로 웃었다
모든 근심을 내려놓으려는지
아내는 털이 다 빠져나가고
나는 밤마다 시름에 짓눌려
짧은 머리 한쪽이 항상 들떠 있었다
긴 머리를 깎을 때면
미용사더러 들뜬 머리 좀 차분히 손질해 달라고 했다
미용사는 잠버릇 때문일 거라고
한쪽으로 쏠린 털을 차분히 다듬어 주었다
짓눌린 것은 다른 한쪽을 일으켜 세우나 보다

- 전홍준 「털」 전문, 『눈길』

유난히 아픈 이들이 많은 요즈음이다. 아팠다 하면 암인 세상이다. 어쩌랴. 50대 초반으로 유추되는 시인의 아내와 시인이 말할 수 없이 짠하다. 머리칼에 물을 적셔 가라앉히듯 슬픔을 담담히 잠재우며 진술하는 고해가 애잔하다. 당신의 고통이 나의 고뇌를 만든다. 웃음도 통증도 다 전염되는 식물들이다. 나도 머리뼈를 다쳐 살짝 짓눌려 있어서인지 한 쪽 머리칼은 눌려있고 한쪽은 들떠 있다. 이 모양이 거슬려 이발을 자주 하는 편이다. 시인은 근심을 안고 사는 머리칼 한 편이 들떠있다고 한다. 빠져나간 아내의 머리칼과 융기하는 자신의 머리칼은 고통과 희망의 동일체다. 시는 다른 형태의 대비를 통해서 동질성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문동만 시인 산문 중에서


[2021-07-24 23:52:1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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