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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0-1. 밭 가운데 외딴 집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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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밭 가운데 외딴 집 <이현옥의 타박타박>



사서라는 직업을 오랜 시간 갖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사와 지식의 흐름 같은 것이 어렴풋 짚어진다. 요 몇 년 심리학 분야의 서가는 웬만큼 늘렸는데도 또 다시 배가 작업을 해야 할 정도다.

심리학 분야의 책들이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역시 관계들의 어려움을 숙명처럼 지니고 사는 부류인지라 이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우쳐 준 책이 있는가 하면 도가 지나치게 자기계발서로 치우쳐서 약간 불편한 면도 없지 않았다.

이 계열의 책들은 당분간 지속적인 확장세를 보일 것 같다. 날로 세분화되고 범주가 다양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듯 심리학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 자신과 당신들의 마음이 궁금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누구인가’, 나와 다른 ‘당신은 또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찾으려는 요구 때문에 이 분야의 책들이 풍성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이라는 글자 앞뒤에 웬만한 낱말이나 단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싸우는 심리학』, 『가짜행복 권하는 사회』,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공간의 심리학』, 『공간의 위로』 등 사회와 공간(=건축)에 관한 심리학이 요즈음 내가 들여다본 책들이다.

우리 집은 밭 가운데에 외따로 있는 초가였다. 내가 세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께서 제금(일종의 분가)을 내보냈는데 그때 어머니가 선택한 집이었다. 텃밭 200평과 저 멀리 4마지기의 논과 함께 말이다.

어머니는 하필 이 집에 도장을 찍었을까. 다섯 자식을 거느리고 이 외딴 섬에서 철저하게 홀로 살아갈 작정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까. 불현듯 그 심사가 헤아려 진다.

이 외딴 집의 공간과 구조 등을 짚고 넘어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다. 굳이 이유를 붙여 보자면 내가 현재 그 집터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지붕만 슬레이트로 바뀐 집을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큰오빠가 부도를 막는데 보태보겠다며 팔고 말았다. 얼마 후 새로운 주인은 그 집을 허물고 상가 겸 주택을 지었다.

2000년 중반 즈음 우연찮게 내가 그 집을 사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이곳저곳 흘러 다니다 여기 정착한 햇수가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주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우리 집의 서쪽으로는 조립식 주택이 북쪽으로는 상가와 2차선 도로 등이 들어서서 이제 우리 집은 외딴집이 아니다. 다만 우리 집 북동쪽으로 났던 길만은 변함이 없다.

내가 글이랍시고 끄적이는 장소는 부엌으로 당시에도 부엌이었다. 아궁이에 땔감을 깊숙이 몰아넣고 불을 때면서 나는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와 라디오에서 들은 유행가를 부지깽이로 장단을 맞춰 불렀다. 부엌과 연결된 마루를 오가며 숙제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나는 ‘멀티형 인간’으로 살았다. 지금도 나는 식탁 위 노트북에 글을 몇 자 쓰다가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음식을 확인하느라 오가고 있으니 말이다.

부엌 창문 너머 옥상 자리에는 쪽마루가 딸린 작은 뒷방이 있었다. 큰 오빠가 한때 과외를 받고, 그가 군대에 가자 화산면에서 온 젊은 부부에게 세를 놓았던 곳이다.

한밤중 요강에다 오줌을 누기 위해 뒷문을 열다가 나는 기겁을 하곤 했었다.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부엉이가 울타리에 앉아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가 모두 예쁘리라는 상상을 확 깨뜨린 것이 바로 부엉이였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음습하고 추운 뒷방을 나는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곳에 살았던 젊고 예뻤던 아줌마를 빼고 말이다.

지금은 여름 중에서도 내가 싫어하는 장마철이다. 글의 맥락을 잠깐 잘라내더라도 이 대목은 짚고 가야겠다.

외딴 집 길과 닿아 있는 담은 돌과 흙으로, 나머지 세 곳은 모두 밭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 경계에는 여기저기서 꺾어 온 나무들을 새끼줄 사이사이에 듬성듬성 꽂아 놓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이면 우리 가족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있으나마나한 울타리를 뚫고 비가 쳐들어오는 일은 예사였고, 쥐가 드나들면서 생긴 구멍으로는 빗물이 콸콸 쏟아졌다. 어머니와 오빠들은 그 구멍들을 찾아 메꿔야 했다. 울타리와 맞닿아 있는 남의 밭고랑까지 나가서 물이 잘 빠지도록 물길을 내주어야 했다.

나와 동생은 부엌 담당이었다. 아궁이에 물이 차지 않도록 바가지로 쉴 새 없이 퍼냈다. 거무죽죽한 흙바닥이 파일 정도로 물을 퍼내 부엌 밖으로 내던졌다.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은 걸레와 몇 개 안되는 그릇들로 단속해야 했다. 이 대공사가 마무리되어야만 우리는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해가 뜨기 전 밥숟가락을 입에 넣는 둥 마는 둥 물 구경을 하러 우리들은 뚝방에 올라섰다. 바다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싶게 시커먼 흙탕물은 둑을 무너뜨릴 기세로 쿨렁쿨렁 세차게 흘러갔다.

넝쿨째 뽑힌 참외와 수박, 나무들의 밑동아리, 세간살이, 닭과 돼지새끼들이 저만치 떠내려 올 때마다 우리들은 소리를 질렀다. 마치 처음 보는 장면처럼 말이다.

남자들은 장대나 갈퀴, 새끼줄 등으로 그것들을 건져내느라 아우성이었다. 어른들은 비가 더 내리면 둑이 넘칠 것 같다고 깊은 한숨을 토하며 산 위에 걸쳐 있는 검은 구름들의 동향을 살폈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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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69



[2021-07-20 08:59:1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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