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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유희 또는 말장난? - 이병초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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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유희 또는 말장난?
  


일상의 언어 현실에서 차용된 시어는 생생하다. 입말이 가진 현장성과 행동성은 몇 마디의 어법이나 단어 한 개로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쾌함까지 갖는다. 이 지점에 언어유희라는 용어가 닿는다. 영어의 pun에 해당될 이 기교는 소리의 유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메타언어에 비중을 둔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리

-「동학민요」, 전문.



동학혁명 당시에 창작되었을 이 민요는 뜻보다도 갑오년에 뒤에 이어지는 을미년, 병신년 등의 입말에 더 관심을 가졌을 터이다. 시어 ‘가보세’는 갑오년(甲午年)과 싸우자는 행동성에, ‘을미적’은 을미년(乙未年)과 행동의 미적거림에, ‘병신되면’도 병신년(丙申年)과 비속어인 병신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동학군은 갑오년에 대내외적 모순을 끊어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싸우지 않고 을미적 을미적 굼뜬 행동을 보이다가 병신년까지 가면 필패가 자명하니 죽창 든 해에 혁명을 완수하자는 진군가 역할을 민요에 맡긴 셈이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입말을 절묘하게 버무려 시대의 당위성으로 응집시킨 동학민요 집단창작자들의 언어감각이 놀랍다. 모두가 익히 아는 불과 4개의 단어로 뜻하는 바를 명쾌하게 전한 비유의 미덕은 시의 오랜 관습이기도 하다. 또한 이 민요는,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기발한 기지(wit)이거나 풍자의 형식이 됨과 동시에 메타언어를 생성시킨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친숙한 단어나 어법에 이중의미를 갖게 함으로써 당대의 집단적 그리움을 떠오르게 하는 기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민중성이 강조된 판소리나 탈춤, 민요 등에서 해학을 넘어선 말들의 중의적인 쓰임새를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일상어에 속뜻을 갖고 쓰이는 말이 많고 그런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중에는 점잖지 못한 말도 다수 섞여 있다. 문제는 ‘말’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특정의 말이 비속어적 속성을 가졌을지라도 발화 상황에 적절히 사용되는가가 관건이다. 점잖지 못한 말들 중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말이 ‘개’이다. 영어 dog를 ‘덕’으로 발음하던 광복 후의 현실에서도 개는 요즘처럼 쓰임새의 폭이 넓었던 것 같다.

변영로 시인과 최남선, 두 사람에 얽힌 일화는 시어(詩語) 운용의 측면에서 여전히 흥미롭다. 시 「논개」로 널리 알려진 변영로는 친일파의 우두머리 격인 최남선과는 달리 변절하지 않았던 시인이다. 해방공간이라고 일컬어지는 광복 후의 시기가 혼란의 연속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연일 계속되는 혼란과 좌·우익의 정치적 대립 구도에서 문인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당시 문단의 주도권을 쥔 좌익 문인들에 비해 우익 문인들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두 사람이 어떤 문인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이 참석한 회의가 <전조선문필가협회>인지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인지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이 글은 회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문인들의 뜻이 제각각이어서 의견일치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저 잘났다고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던 최남선 씨가 참지 못하고

“사람은 덕이 있어야 돼.”

라고 말참견을 하자, 변영로 선생이 이 말을 제대로 받았다.

“맞아, 덕은 영어로 개야.”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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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624






[2021-03-23 09:37:4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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