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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2.막내고모가 사온 때때옷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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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내고모가 사온 때때옷 <이현옥의 타박타박>


누구라도 그러했듯 나 역시 설을 기다렸다. 가난이 일상인 농촌 아이들은 제법 큰 콩고물이 떨어지곤 하던 설날을 손가락 꼽으며 고대했다. 어머니는 설날 며칠 전부터 할머니 댁을 오가며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었다.

여느 명절 같으면 이틀 전에 가셔서 강정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시루떡을 찌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설엔 달랐다. 계급이 썩 높은 군인에게 시집을 간 막내고모가 첫 나들이를 한다고 유별났던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날 아침이 밝았다. 저녁 내내 설레어서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깊이 잠 들었나보다. 눈이 번쩍 뜨여 쳐다보니 어머니 자리는 이미 비었다. 대신 우리들 머리맡에는 설날에 입을 옷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물론 새 옷은 없었다. 다만 닳고 닳은 소매 끝이 가지런해졌다. 그런데 동생 옷은 못 보던 것이다. 어디서 얻어다 놓은 모양이다. 동생의 얼굴이 그나마 화안해진다.

작은오빠는 뭐가 그리 기분이 나쁜지 할머니 댁에 가는 동안 길목에 서 있는 나뭇가지를 연신 분질렀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빨랑빨랑 따라오라며 볼멘소리까지 보탰다.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지루한 제사가 끝나고 들기름 발라 구운 김에 허연 쌀밥을 싸서 먹은 뒤, 소고기 무국에 밥을 말아 배터지게 먹고 나니 할머니의 분배가 시작되었다.

손주들을 주욱 세워 놓고 제사상에서 내려온 밤과 곶감, 깨와 쌀강정, 토막토막 자른 산자를 치마폭에서 꺼내어 앞줄에 서 있는 오빠들과 남자 사촌동생들부터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는 애가 탔다. 끄트머리쯤에 서 있는 내게도 돌아올 몫이 있을까. 심히 염려가 되었으나 다행히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분배가 끝나자마자 작은오빠는 우리들을 재촉했다. 점심까지 먹고 집에 가도 되는 날인데 자꾸 눈치를 보냈다. 오빠도 혼자 일찌감치 돌아가기가 뭣한 모양이었다.

그날, 우리 오남매는 점심을 먹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어야 옳았다. 그러나 이 핑계 저 핑계 삼아 내 엉덩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막내고모가 멀리서 온다는 소문을 입수했는데 선뜻 발길이 떨어지겠느냐 말이다.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는 얘기는 수차례 들었다. 어린 내 소견으로도 고모는 분명히 무엇이라도 사 올 것이었다. 나는 버텼다.

드디어 고모 일행이 타고 온 군용차량이 마당에 들어섰다. 사진에서 본 박정희처럼 번쩍번쩍한 군화에 국방색 점퍼를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고모부가 뒷좌석에서 내렸다. 남자 사촌들은 우와~~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자꾸만 어머니 치마폭을 만지작거렸다.

대문 밖 동네 꼬맹이들은 차 뒤꽁무니에서 나오는 연기에 코를 벌름거렸다. 나 역시 그 냄새가 좋았다. 운전기사는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선물들을 마루에 옮겨놓았다.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자꾸만 보따리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 속에 들어 있을 내 몫의 선물을 상상했다.

막내고모는 둘째와 셋째 작은집 아이들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많이 자랐다고, 처녀 총각 꼴이 배었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우리 오남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작은오빠는 볼이 퉁퉁 부은 얼굴로 다시금 나에게 주먹 짓을 보냈다.

이윽고 선물보따리가 풀렸는데 아, 거기에 우리 오남매 것은 없었다. 동네 꼬맹이들과 똑같이 사탕을 몇 개씩 손에 쥐어 주었을 뿐이다. 사촌들은 고모가 사온 때때옷으로 갈아입으며 예쁜 머리핀을 꽂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작은오빠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집에 안 갈래? 나와 동생의 손목을 확 비틀며 잡아끌었다. 쫓기듯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일렬로 서서 도랑을 건너 집에 들어설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두세 명의 동네 언니를 거쳐서 이제야 내 것이 된 스웨터의 보풀을 뜯어내며 분을 삭였다. 큰오빠는 문을 쾅쾅 여닫았다. 양은대야를 발로 찼다.

나는 궁금했다. 분배는 왜 공정하지 않은가. 우리 오남매는 왜 늘 푸대접인가. 차별을 받는 이유가 뭔지를 알고 싶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작은오빠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큰오빠는 아예 함구했고, 무서워서 말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불속에서 그저 눈만 빼꼼히 내민 채 쥐 오줌과 빗물로 얼룩진 누런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달포 전 우연히 막내고모의 부음을 들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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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281







[2021-02-19 00:14:24 에 등록된 글입니다.]


김경운
왜 둘째와 셋째 작은집 사촌들 때때옷만 사왔는지 못내 궁금합니다. ㅠㅠ 2021-02-19
00: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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