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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 토끼 몰러 나간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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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끼 몰러 나간다! <이현옥의 타박타박>



이른 아침부터 큰오빠와 그 친구들이 수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끼 몰러 간다는 것이었다. 마루에서 내다보는 앞산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발목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정강이까지 빠지지 않고는 고샅길도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른들은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저렇듯 속닥거리는 것이리라. 아무려면 어떠랴. 나는 여동생에게 눈짓으로 따라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눈 속에서 고무신이 벗겨지는 사단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발을 묶을 만한 끈이며 새끼줄도 챙겼다. 오빠들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했다.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오빠들이 잡아 온 산토끼들을 부엌칼로 자디잘게 쪼아서 무 넣고 자글자글 끓여준 어머니의 토끼 매운탕 맛을... 설 명절 큰집에서 쇠고기 양지 부위와 사골, 잡뼈 등을 넣고 푹 고아낸 곰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 맛을 알고 있는 나는 ‘순절리’ 산으로 토끼몰이를 나선다는데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국물이라도 한 입 얻어먹으려면 하찮은 역할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눈에 덮인 냇가랑 보를 건너 순절리 산을 향했다. 새끼줄로 감발 친 신발은 아직 믿음직했다.

성작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의 아랫자락에 동네 오빠들과 머슴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빠들의 각오는 비장했다. 토끼몰이는 아래서 위로 하지 않는다.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토끼를 모는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고함을 지르며 토끼를 몰 선두에는 누구를 세울 것이며, 끄트머리에 배치할 애들까지 미리 각본을 짜놓은 듯했다.

여자애들은 걸리적거린다, 얼쩡거리지 마라, 눈알을 부라렸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 눈에 띄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슬금슬금 뒤쫓아 갔다. 그들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눈 위 어지러운 발자국이 우리의 이정표였으니까.

오빠들과 머슴아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려던 차에야 따돌리는 것을 포기했는지 우리에게 멀찌감치서 망이라도 보게 했다.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정강이를 힘껏 들이받고 달아났던 그 산토끼를 말이다. 위에서 한꺼번에 몰고 내려오는 오빠들의 고함소리에 놀란 산토끼가 하필 내게 달려들 것은 무엇이냐. 여자애들은 놀라서 일제히 소리를 쳤다.

산토끼는 내 뒤로 뺑소니쳤다. 이런 나를 지켜 본 작은오빠는 냅다 뛰어와서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가시내가 집에 가만히 있을 일이지 따라와서 훼방을 놓는다고 윽박질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오들오들 떨었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잦았던 그해 겨울 우리는 서너 차례 더 토끼를 몰러 나갔다. 운이 좋을 때는 두세 마리를 잡아 올 때도 있었고, 더러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열두 살 먹은 내 정강이를 들이받고 내뺀 산토끼, 아직도 문득문득 오른쪽 다리와 허벅지 쪽이 근질근질할 때가 있다. 쫑긋 선 귀와 커다란 눈, 회색도 밤색도 아닌 털의 감촉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작년 여름에 비가 엄청 쏟아지더니 올겨울은 눈발이 제법 잦다. 오늘도 펑펑 눈이 쏟아진다. 온통 눈에 덮인 산들을 바라보며 토끼 잡겠다고 나선 조무래기들이 우리 동네뿐이었을까마는, 가난한 산천의 핏줄이었던 그 오빠들과 머슴아들과 가시내들은 어디에서 마음속의 순절리 앞산을 오갈까.

흩날리는 저 눈발을 바라보면서 산토끼 매운탕 맛을 그리워할까. 그나저나 내 정강이를 냅다 들이받고 내뺐던 산토끼는 순절리 산자락 어디쯤에서 예쁜 일가를 이루었을까. /이현옥 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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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233







[2021-02-03 00:32:0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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