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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9. 도종환- 이별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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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9. 이별 - 도종환



이별 - 도종환


오직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고 사는 것은 신앙심이 아닐까. 얽매임이나 집착과는 근본이 다른 설렘, 당신의 몸속에 간직된 순결성을 내 정신이 흐려지기 전까지 존중하고 지키겠다는 마음이 진짜 신앙심이 아닐까.



당신이 처음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이것이 이별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 있고

나 또한 언제나 당신이 돌아오는 길을 향해 있으므로

나는 헤어지는 것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이것이 이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별은 떠날 때의 시간이 아니라

떠난 뒤의 길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합니다.

당신과 함께 일구다 만 텃밭을

오늘도 홀로 갈다 돌아옵니다.

저물어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 돌아오면서

나는 아직도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당신이 비록 내 곁을 떠나 있어도

떠나가던 때의 뒷모습으로 서 있지 않고

가다가 가끔은 들풀 사이에서 뒤돌아보던 모습으로

오랫동안 내 뒤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헤어져 있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가도

이 세상이 다 저물기 전의 어느 저녁

그 길던 시간은 당신으로 인해

한 순간에 메꾸어 질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도종환, 「이별」, 전문.



헤어짐 후의 아픔도 사랑임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이별 뒤의 긴 시간이 소용되는 것이겠다. 내가, 오직 당신을 생각하는 내가 이별 후의 쓰라린 시간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당신이 돌아오는 길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별은 순간을 뜻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떠난 뒤의 길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진술에 눈길이 간다. 코에 피 냄새가 나기도 했을 목 마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순간을 노트에 찬찬히 적어갔을 터이다.



사랑은 멈춤이 없다. 오늘도 “당신과 함께 일구다 만 텃밭을” 갈다가, 날이 “저물어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 혼자 돌아오면서 당신을 생각한다. 언젠가 들풀 사이에서 ‘나’를 향해 뒤돌아보던 당신의 모습, 아직도 “내 뒤를 지켜보고 있”을 당신의 숨결은 촉촉하다. 당신이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초저녁별이 글썽인다.

세상이 다 저물기 전의 어느 저녁, 이별 뒤의 긴 시간이 당신으로 인해 “한 순간에 메꾸어 질 것”이라는, 시간을 감정의 질량으로 메꾼 시의 촉기가 고결하다. 혼자 견디는 목 마치는 시간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하리라는, 당신이라는 신앙이 있으므로 세상은 살 만하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52










[2020-12-04 16:15:4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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