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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8. 이시영-10월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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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8. 10월 - 이시영



10월 - 이시영


몇 번을 읽어도 의미 전달이 안 되는 시들이 참 흔하다. 시는 의미 전달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게 정설일지라도 이 말이 비문 투성이의 시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구의 의미가 전달되었을 때, 시는 시어 개개의 인상과 소리맵시가 어울려 새로운 형상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 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붓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 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시영, 「10월」, 전문.



농경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10월이 정답게 다가설 것 같다. 재두루미가 하늘을 헤엄치고 “콩 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내고, 뭔가를 못 참겠다는 듯 미꾸라지들도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는 10월. 이 개구진 수런거림에 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을햇살을 두르고 깊어갈 10월의 생명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시어는 음성상징어들이다. 재두루미, 콩꼬투리, 콩알, 미꾸라지 등의 시어들이- 후다닥, 느릿느릿, 배시시, 우수수 등의 상징어와 통통거린다는 서술어에 차별 없이 조응하면서 시는 자연물들이 너나들이로 어울린 가을 풍정을 얻는다.

네 개의 장면으로 짜인, 삶의 허기가 일절 제거된 이 시는 통째로 동사가 아닐까. 가을은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벗어나 저마다의 가을 형상이 저절로 그려지도록 시는 가을의 생명력에 닿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가는 자연물들의 평등한 어우러짐, 자연을 빼다박은 어법이며 소리맵시가 현대시의 미래라는 듯이.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30










[2020-11-17 18:36:1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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