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이병초 맑은시비평51. 박태건-토란대
작성자 : 김경운 
파일1 : 1.png (532.8 KB)
파일2 : 1_2.png (165.8 KB)







<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51. 토란대- 박태건



토란대

사람은 누구나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기억을 떠올린다. 때론 기억이 사실보다도 더 적확하게 과거의 일을 추리는 경우도 있다. 기억은 현재적 욕망으로 재해석되는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를 짚어보는 행위가 과거지향적이라거나 삶의 패배를 뜻하지는 않는다. 기억은 그늘을 가지고 있으므로 되레 삶의 동력으로 작동된다.  




여자가 마루에 앉아 토란대를 다듬는다

늘어진 메리야스를 입은 여자처럼



푹, 삶은 토란대가 벗겨질 때마다

여자의 목덜미에 땀이 흐른다



젖고랑을 지나 아랫배에 살집으로 스미는 기억이

길을 찾아가는 여름밤



기다렸다는 듯이 사립문 안으로

머리를 흔들어대는 토란대



줄기를 벗겨내려면 먼저 목을 비틀어야 했다

손톱에 배는 토란의 진액


                         -박태건, 「토란대」, 부분.




  농경문화에 대한 기억이 짧아지는 시점에 토란대를 꺼내든 시인의 눈길이 정답다. 토란대에 어린 한국적 이미지는 내일로만 치닫는 오늘을 잠시 쉬어가라고 거미줄 쳐진 처마그늘을 내줄 것 같다.

  시에 닿는 대상은 여자이다. 그녀가 통과한 내력이 생략된 채 “푹, 삶은 토란대가 벗겨질 때마다/ 여자의 목덜미에 땀이” 흐른다. 소리가 없는 시행은 사뭇 적막하다. 그러나 땀이 “젖고랑을 지나 아랫배에 살집으로 스미는 기억”으로 변주되면서 시는 생동감을 띤다.

  여자의 삶이 궁금하다. 무슨 사연을 품고 여름밤을 지나는 중인지도 알고 싶다. 이때 토란대가 머리를 흔들어대며 “줄기를 벗겨내려면 먼저 목을 비틀어야 했다”라는 시행에 다다르게 한다. 토란대 목을 비트는 행위가 낯설지 않다. 모두 겪었던 어제를 돌연 오늘로 재생시키는 집중력이 놀랍다.  

  시인은 여자를 보면서 어떤 기억을 뒤적거렸을까. 여자가 빚어낸 그늘, 밝음에 대비되는 그늘이 시의 욕망으로 환치되는 순간 시인은 토란대 목을 비틀 듯 자신의 이력을 모질게 확인했을까. 아니면 그렇게 살도록 강요당한 하루를 시의 그늘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현재적 욕망으로 버무려낸 「토란대」는 그의 ‘시 그늘’을 더 웅숭깊게 펼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늘어진 메리야스처럼 생기 잃은 오늘을 그는 “토란의 진액”처럼 순 알짜로 시의 그늘을 지어낼 터, 독자는 그 그늘에서 삶의 동력을 발효시키는 시의 울림을 만날 것이다. 문단에 데뷔한 지 무려 25년 만에 첫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모악. 2020,8.)를 상재한 박태건 시인께 소주 한 잔을 청한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10







[2020-09-22 18:24:02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