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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43. 유강희-산불감시초소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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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43. 산불감시초소 - 유강희



산불감시초소

  숲속에 홀로 내던져지고 싶은 그가 있다.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며 자신의 내면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산다는 게 뭔지, 바쁘게 살면 정말 행복해지는지 그것도 따져볼 모양이다. 문명에 버려진 듯한 산불감시초소, 푸른 페인트칠이 벗겨졌고 붉게 녹슨 살이 드러났을지도 모를 컨테이너 박스- 여기를 택한 그의 눈매가 서늘하다.



어떤 작가는 성당을 작업실로 썼다지만

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긴 철제 사다리가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러나 결코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은 아님)

그리고 작은 창이 달려 있고

녹색 양철 지붕이 있는 집,

이 산불감시초소에서 한 계절을 나고 싶다

나는 매일매일을 뜬눈으로 지샐 것이며

밤에는 모르는 별의 문자를 해독하고

잠 못 드는 새의 울음소리를 채집하여

나의 자서전에 인용할 것이다

(그건 아직 먼 후의 일이지만)

그리고 나는 먼 구름을 애인으로 둔

늙은 바위로부터 겨우겨우 모은 전설을

바람의 피륙에 한 땀 한 땀 기록하리라

나는 또 사라진 짐승들의 발자국을 쫓아

하루종일 숲속을 헤맬 것이다

나의 관심은 그러나 그것들에 있지 않다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의 불타오르는 내면을

나의 열렬한 정부로 삼고 싶을 뿐,

멀리 도시의 불빛도 잠재우고

나는 홀로 외롭게 마음속 산적을 불러

그들과 함께 녹슨 칼을 푸른 숫돌에 갈며

절망이 타고 가는 말의 급소를 노릴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산불을 지르고 도망칠 것이다

비겁의 검은 숲을 모조리 불태울 것이다

                        
-유강희, 「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부분.
  

    
  초소에서 한 계절을 보내고 싶은 그의 하루하루가 꽤 분주하다. 세상이 역사의 멱살을 틀어쥐든 말든 “새의 울음소리를 채집”하고, 밤이면 “별의 문자를 해독”하며, 늙은 바위에게서 얻은 사랑의 전설을 “바람의 피륙에” 기록하겠다는 욕망은 푸근하다.

  어제를 돌아보듯 “사라진 짐승의 발자국을 쫓아”보겠다는 다짐은 급기야 마음속의 산적(山賊)을 불러낸다. “도시의 불빛”으로 환기되는 문명적 색감을 아예 저버리고 “녹슨 칼을 푸른 숫돌에 갈며/ 절망이 타고 가는 말의 급소”를 노리며, 그는 비겁에 길들여진 것들을 화끈하게 태워버리고 싶다.

  사는 데 무엇이 중요하고 각별한 것인지를 되묻듯 당신의 불타는 내면에 빨려 들어가듯 유유히 시상을 전개해가는 서사적 이미지와 운율은 값지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 시원의 건강함을 누가 거세시켰는지- 바쁘게 살아도 일반인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가 뭔지는 시 바깥의 몫이겠다.

  오늘도 숲에 못 가고 마음 속 산적(山賊)을 불러낼 그는, 모두의 ‘나’로 읽힌다.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64











[2020-07-28 09:56:4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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