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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have to, 문현숙시인의 달방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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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블로그 <문현숙 시인의 달방>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ungreen911&logNo=221949583973



그건 세 글자다

                      詩人  정양



왔다리갔다리 시계불알 화학선생님은

분필 하나 달랑 들고 교실에 들어선다

출석도 안 부르고 차렷 경례 끝나면 곧바로

노트도 책도 없이 고개를 한 번씩 좌우로 저으며

수업 내용을 칠판에 빼곡히 적으신다

늘 그러시는 분이라 그걸 예사로 알 뿐

그걸 감탄하는 아이들은 없다

판서가 끝나면 교실 뒤쪽 빈 공간에서

왔다리갔다리 시계불알 노릇을 하다가

아이들 노트정리가 대충 끝난다 싶으면

교단에 올라 판서 내용을 해설하시곤 했는데

그날은 왔다리갔다리를 멈추고 칠판으로 다가가서

'모든 생물은 H2o를 保持한다'라고 적힌

保持 밑에 밑줄을 두 개나 쫙쫙 긋고

분필로 그 밑줄을 톡톡 두드리며

"여기서는 꼭 漢字로 써라" 한 마디 하시고는

어께에 내려앉은 분필가루를 좌우로 후후 불고

다시 교실 뒤쪽으로 가신다

두어 녀석의 큭큭거리는 소리를

선생님은 뚜벅뚜벅거리는 발소리로 꾹꾹 죽이더니

아이들 등 뒤에 한 말씀 던지신다

"지짜로 끝나는 말은 대개 좋지 않다"

두어 군데서 큭큭거리는 소리가 다시

꾹꾹꾹꾹 죽어가는 판에 한 아이가

"아버지는요?" 하고 묻자 간발의 차이도 없이

"그건 세 글자다"라는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에

꾹꾹거리던 교실은 마침내 빵 터져버렸다

돼지 엄지 휴지 정지 거지 토지 연지 꽁지

지짜로 끝나는 두 글자 말들이 많고 많건만

'좋지 않다'는 그 말씀에만 홀려

많고 많은 지짜로 끝나는 두 글자 말들을

아이들도 선생님도 깡그리 까먹어버린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거나 발을 구르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교실 뒤에서 혼자 빙긋거리며

왔다리갔다리 다른 말들 다 까먹은

지짜걸음을 뚜벅거리셨다.









[2020-05-18 17:50:0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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