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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작성자 : 鄭洋  (홈페이지)



춘분

출근하면서 연구실 문을 잠근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시늉도 하지 않으리라
마침 강의도 없다 밖에 안 나가려고
쉬야도 세면대에 하고 점심 저녁 쫄쫄 굶고
앉았다 일어났다 눈 감았다 떴다 어둡도록
불도 안 켜고 무슨 쭘뼝인지 나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든 누굴 위해서든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세월이 옹골질 것 같다
봄날이 오든 가버리든 밤낮이 길든 짧든
내버려둬라 내비둬라 냅둬라 낯익은 말투로
시간이 나를 포기할 때까지 나도
세상을 포기하면서 뒨전거렸다
퇴근은 해야지 싶어 하루종일
아무도 두드린 일 없는 문을 멋쩍게 열고
가고 싶은 데도 없이 밖에 나선다
갈 데가 집뿐인가 집뿐인가 주억거리는 주차장 불빛에
산수유꽃 몇 그루
빈 주차장보다 더 적막하게 피어 있다

-『현대시학』, 2008. 8월호.


[2020-03-20 08:49:5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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