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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13. 안도현-기차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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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13. 기차 - 안도현





기차

  기차는 오늘도 달린다. ‘뿡뿡’ 소리를 내며 철길을 달린다. 기차는 두 줄로 놔진 철길을 배반했거나 탈선한 적이 없다. 기적소리처럼 뿡뿡하고 울음소리는 냈을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오갔을 터이다. 낮과 밤이 교차되듯 수많은 날이 지나갔어도, 순종하듯 살았어도 변하기는커녕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삶이 기차에게만 해당되랴. 이런 삶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빨갛게 앞을 가로막는 사회적 금기- 그 불온한 것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은 기차의 “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처럼 뜨겁다.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뿡뿡, 하고 운다, 우는 것은 기차인데

울음을 멀리까지 번지게 하는 것은 철길이다, 늙은 철길이다



저 늙은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궤짝과 포탄을 실어나른 적 있다

허나, 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보지 못했다



곡성이며 여수 따위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반하지 못했으므로

단 한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



철길이란, 멀리 가보고 싶어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은 것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기차를 구하지 못했다

철길을 끌고 다니는 동안 서글픈 적재량이 늘었을 뿐



그리하여 끌고 다닌 모든 길이 기차의 감옥이었다고

독방이었다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저도 녹슬었다고

                                            

기차는 검은 눈을 끔벅끔벅하면서 기어이

철길에 아랫배를 바짝 대고 녹물을 울컥, 쏟아낸다

                                                    -안도현,「기차」, 전문  

  기차도 자신의 욕망대로 살고 싶다. 목숨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아주 탈선하고 싶은 욕망까지를 깡그리 벗어버리고도 싶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기차가 태어나기 전에 도돌이표처럼 제자리걸음을 하도록 누군가가 시간표를 미리 짜놨기 때문이다. 이런 기구한 처지 또한 기차에게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돈을 삶의 좌표로 삼고 거기에 목숨처럼 매달리도록 강요하는, 눈에 안 보이는 적을 깨치지 않고는 개인의 뜻과 관계없이 벌써 짜인 자본의 시간표에서 누구도 벗어날 길은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차는 자신의 욕망을 존중한다. 어딘가로 “멀리 가보고 싶어서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았다"는 탁월한 진술이 이를 증명한다. 자신이 오갔던 길이 ‘감옥’이었고 ‘독방’이었다는 비유는 독자의 눈시울을 고요히 적신다. 인간적 영역을 축소화시키는 문명의 시간표에 복무하는 게 삶이 아니라 인간 존엄을 회복하려는 치열한 과정이 삶이란 점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좋은 시는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고 싶은 불온한 욕망을 누구에게든 평등하게 나눠준다. 언어의 날렵한 스펙트럼을 펼쳐보이기보다는 모두가 아는 언어로 기차와 철길의 대응관계를 우리네 삶으로 확장시킨 서정시 한 편. 삶의 “서글픈 적재량”을 싣고 기차는 오늘도 달린다. 어른이 되었어도 왜 눈물은 안 마르는지, 혼자 흘리는 눈물은 왜 쏟을수록 맑은지 다 안다는 듯 ‘뿡뿡’소리를 낸다. 2020년에도 안도현의 기차는 시와 삶의 폭을 맘껏 넓혀갈 터이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93











[2020-01-04 20:24:4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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