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작은도서관40. 책 '그 집 앞' / 이혜경
작성자 : 김경운 
파일1 : 40.png (306.9 KB)
파일2 : 40_1.png (265.1 KB)







<작은 도서관>40. 책 '그 집 앞' / 이혜경

  

기억을 소환하다

  중학교 저학년까지 봄과 가을이면 나는 거의 방에 있지 않았다. 그늘이 들지 않는 볕을 따라 이곳저곳 몸을 움직이곤 하였다. 마루에서 토방으로 마당으로 오후에는 서쪽에 있는 우물가까지 영역을 바꿔가며 양지 바른 곳을 찾아 다녔다.

봄바람이 구멍 숭숭한 스웨터 속으로 파고들어도 덕지덕지 기운 창호안 거기보다는 햇살이 훨씬 좋았다.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던 방안 그늘이 싫었던 모양이다.

등짝에 내려앉던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빌려 온 책을 읽거나, 뜯어온 달래와 쑥을 다듬거나, 어머니께서 장에 내다 팔 그 무엇들을 손질하거나, 공기놀이도 즐겨 했지 싶다. 아! 동생 머릿속 이와 서캐를 잡아 주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가끔 동네 소가 배고파서 슬프게 우는 소리와 닭들의 홰치는 소리, 이웃집 아저씨의 욕설, 세숫대야 집어던지는 소리 사이사이로 들리던 소리가 있었다.

읍내 장터 쪽에서 누군가 틀어놓은 <춘향가>중 임방울의 ‘쑥대머리’와 ‘옥중상봉가’ 지금도 누구의 소리인지 알아내지 못한 <심청가>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 등이 그것이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봄과 가을을 보냈다.

청승맞은 그 소리를 따라 부르며 어느 순간 나는 작대기로 고수노릇까지 하며, 장단을 맞추고는 했다. 그와 반대로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소리를 제외하고는 많은 소리들이 숨을 죽였다. 여름은 논일 밭일을 돕거나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노느라 그런 소리들이 귀에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시내로 고등학교 다닐 즈음부터 이 소리들을 자주 들을 기회가 없었다. 가끔 휴일에 들리는 소리는 판소리가 아닌 ‘시조’였다. 굉장히 느린 가락이었는데 엄마에게 노래 제목을 물어보았더니 천편일률적으로 ‘시조’라고 하셨다.

나는 제목이 한결같은 이 느려터지고 높낮이가 거의 없는 이 음악도 그냥저냥 들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읍내의 아저씨 DJ가 바뀌었거나, 기존의 DJ가 새로 등장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던 것으로 나는 짐작해 본다.  



  이런 사연을 품고 있어서인지 나는 우리 가락을 좋아한다. 춤도 민요도 좋고 청승맞은 진혼곡류의 음악들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분단현실과 사회변혁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집에 머물면서 음악이나 듣고 있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돌며, 선후배들과 책을 읽으며 고뇌를 일삼았으며, 때때로 화염병을 든 친구들 옆에서 돌멩이를 나르기도 했다.

시위현장은 늘 시와 음악으로 사람들 마음을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김남주와 김지하의 시들을 누군가 낭송하기도 했으며, 풍물패들은 늘 현장에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리고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 숙연한 음악의 밑바탕에는 진혹곡류가 늘 함께 했는데, ‘슬기둥’의 크로스오버는 우리들을 얼마나 장엄하게 했던가. 신경림의 시 <씻김굿> 에다 곡을 붙여 만든 이 노래(제목 :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는 주먹을 불끈 쥐게 했던가. 눈시울을 적셨던가.



    
  

그 노래를 30여년 만에 듣는다. 슬기둥의 원년 멤버들이 35년 만에 모였단다. 그 작은 콘서트에 내가 지금 앉아 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아니 아무래도 하는 편이 낫겠다. 을씨년스런 가을 길목 토요일이었다.

점심밥 차리기도 귀찮고 따뜻한 국물은 당기고 우리는 순대국을 사먹으러 시내에 나가고 있었다. 신호등에 걸려 한가로워지면 나는 곧잘 나부끼는 현수막을 관찰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다. 네거리 중앙에 ‘슬기둥’이 어떻고 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현수막 끝까지 읽어줘. 내 눈은 고물이 된 지 오래여서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를 않는다. 오늘 3시에 완주군 풍류학교에서 공연이 있단다.

나는 얼른 시계를 확인하고 부지런히 서두르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대학시절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그들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니. 나는 오늘 내 운과 행운에 대해 떠들어댔다. 정작 그들은 시큰둥해 하고 나는 여기저기 카톡에다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 이 공연의 홍보물을 퍼 날랐다.



  정작 공연장에는 나와 동생이 함께 갔고 내가 아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동생은 덕분에 눈물 나는 공연 잘 봤다고 거듭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고도 집에 와서 우리는 유튜브에서 슬기둥의 젊은 시절 노래를 찾아 들어봤다. 특히 강호중이라는 가수?가 부른 ‘꽃분네야’와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에 대해 열띤 음악평을 거침없이 내놓았다.

나이 들어 부르는 노래가 훨씬 깊이 있다고, 젊었을 때의 목소리는 해맑고 순수했으나, 오늘 들은 소리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서 훨씬 좋았다며 밤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 악기들은 왜 이토록 당기는 것이냐고. 우리 악기들을 한 개씩 배워보자고.



  내 동생은 어렸을 적에 판소리와 시조가락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배고팠던 기억도 없고, 자신은 밥이 먹기 싫어 죽을 지경이었다고도 했다.

나는 왜 이런 사소한 얘기들을 기억하는 것일까. 동생인 그녀가 기억의 소환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특기는 놀이였다. 그녀는 그가 즐기며 놀았던 놀이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저장하고 있던가 말이다. 참고로 우리는 두 살 터울이다.



  이혜경의 단편소설 『그 집 앞』 아주 잘 읽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환되는 아픈 기억들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묵직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미세한 떨림이 양 팔뚝을 쓸어내리게 했다.

자신과 똑같은 불행의 경험을 가진 며느리가 눈엣가시인 것은 그 전철을 대물림하기 싫은 때문이리라. 이해가 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가. 작중의 그녀. 이 아픈 일상을 걷고 나오리라 믿는다.

이 작품은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이라는 10권짜리 책 중에서 8권 째 <나와 너>편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황석영 작가가 선정한 한국의 명단편 101편 가운데 한 편이라는 얘기다.

이혜경 작가의 단편집 등에도 실린 소설이기도 하지만 특히 황석영 작가가 뽑은 책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소설 한 편 한 편의 뒤에 황석영 작가가 쓴 해설 때문이다. 이 해설을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므로, 행여 읽어볼 생각이 있거들랑 꼭 이 책에 실린 작품으로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04

[2019-11-07 13:43:27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