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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39. 책 '성경전서' 욥기 편 / 작자 미상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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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39. 책 '성경전서' 욥기 편 / 작자 미상

    
  

- 하나님이 크게 쓰시려고 시험에 빠뜨리다 -

  놀라지들 마시라. 나는 기독교에 입문한 지 50년 이상 되었다. 홀어머니 등에 업혀 다니기 시작하여 당신이 돌아가신 후 1년까지 다녔다. 햇수를 헤아리다 보니 어마어마하여 나도 깜짝 놀랐다.

숫자상으로는 반평생이 나왔지만 행여 내가 신앙심이 대단하다거나 종교 색채가 강하리라는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부부는 당연히 종교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간혹 그들끼리 밥 사 내기를 하는 것도 보았으니 얼마나 반종교적인 사람인지 이해가 되시리라 믿는다.



  내가 왜 종교와 담을 쌓게 됐느냐면 내 등짝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머릿속을 훑어 대던 그 집사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춘기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허리도 아프고 배도 자주 아팠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두드러기가 온몸에 돋아서 결석조차 한 적이 서너 번 있었다. 머리는 또 얼마나 아팠던가. 늘 어지럽고 빠개질 듯 아파서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쓰디쓴 익모초와 쑥을 즙내어 주거나, 피마자기름이며 구절초 삶은 물까지 달여 먹이셨다.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판에 ‘원기소’라는 영양제를 큰 맘 먹고 챙겨 주셨다.

시간이 지나도 별 차도가 없자 급기야 어머니는 교회에서 안수 기도로 용하다는 여자 집사님을 모시고 와서 기도를 받게 하셨다. 그 분은 내가 배가 아프다면 배를 휘어 파듯 손으로 문지르셨고, 머리가 아프다면 머릿속을 할퀴듯 했으며 등짝은 아주 힘껏 내리쳤다.

아주 깡말랐는데도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연약한 내 삭신은 성한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언 은사를 받아 그리한다는 것이다.

“마귀 사탄” 이런 정도의 말은 나도 알아들었다. 나머지는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목소리와 손에 아무리 힘이 들어가도, 나는 더 아프면 아팠지 전혀 병이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분이 오지 않는 날은 어머니께서 늘 기도를 하셨다. 눈물로 하나님께 빌었다. 어느 사이 졸고 있거나 깜빡 잠든 나를 보시고는 내가 믿음이 없어서 병에 걸렸다며 닦달하시기도 하셨다.



  나는 살살 겁이 나기 시작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곧잘 동화나 소설 속 멋진 죽음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런 꿈을 완성하기도 전에 그 집사님한테 두들겨 맞아 죽을 것 같았다.

나는 거짓말을 서서히 시작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거의 나아간다고, 이제 아프지 않다고. 그리고 나는 숨어서 아팠다. 어머니 몰래 머리를 기둥에 찧으며 가려운 등짝을 뾰족한 나무 같은 것으로 긁어대며 참고 또 참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두드러기 증세가 머리로부터 얼굴로 온몸으로 번질 때면 나는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몸이야 옷으로 감출 수 있었다. 긁어서 붉디붉고 탱탱 부은 얼굴로는 문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남학생들에게 흉한 얼굴을 보이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두 발을 뻗자 그제야 어머니는 어디서 돈을 꿔 오셨는지 시내의 한약방을 데리고 가셨다. <기산당 한약방>의 할아버지는 나의 맥을 짚어 보시고는 고개를 좌우로 갸웃하며 맥이 너무 약하다고 기를 보충해야 한다며 처방을 하셨다.

그 약을 먹이고도 어머니는 또 금산의 약재시장에서 생 인삼을 갈아 꿀에 재 오셔서 한동안 먹였지 싶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냥저냥 살만해진 듯하다.

    
  

  이러한 과거를 지닌 내가 어떻게 종교를 좋아할 수 있었겠는가. 딱 잘라 생각해 보면 영양실조에 걸렸던 것을 그렇듯 애먹였으니, 이후 나의 종교생활은 거의 어머니를 배반하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으려 오랜 시간을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유지했다.

하여 50년 이상 교회에 다닌 경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대로 성경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내가 『성경』  구약의 <욥기>편을 읽겠다고 나섰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 서문(1973년)에는 욥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 박경리는 자신의 고뇌를 욥에게 비추어 쓰고 있다.

“악마에게 시험을 당하게 된 그 불운한 사내는 일시에 모든 것을 잃고 자식도 가산도 다 잃어버리고 끝내는 그 자신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에 시달리며 신음하는데, 환부에서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는 욥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부끄럽다.(이하 생략)

시험은 끝나고 모든 잃은 것을 찾은 욥을 염두에 떠올리며 위안을 받을 적에 나는 슬프고 내 자신이 가엾어진다. 이 미물(微物) 같으니라구.” 본인의 고난쯤이야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함을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이현옥

  칼 세이건도 저서 『코스모스』에서 <욥기>를 인용하고 있다.

“네가 넓은 땅 위를 구석구석 살펴 알아보지 못한 것이 없거든, 어서 말해 보아라. 빛의 전당으로 가는 길은 어디냐?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어디냐?”

이 정도의 인물을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책 읽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그를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조차 들게 했다. 역시 그 인물을 깊이 있게 읽고 지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종교로부터 거의 해방되었다. 내 의지대로 신념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지 않아서인지 자유의 몸이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차 어떤 변화무쌍한 삶이 나를 그곳에 이끌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분간 실컷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629


[2019-10-31 13:01:1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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