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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24.영화'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 김한석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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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24.영화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 김한석

     이현옥  


  보고 싶은 ‘이세음’에게

  이세음. 그녀는 우리 대학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가하던 학생들 중에서 유독 내 눈에 띄었던 여학생이다. 독서토론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휴학생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냐고 당돌하게 다가왔던 학생.

물론 나는 환영했다. 국고지원금으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재학생만 참여할 수 있다는 원칙에 약간 어긋나더라도 나는 그 친구를 말릴 재간이 없었다. 내 마음이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쏠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후 학교를 떠났다. 졸업유예 제도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덜컥 졸업한 뒤 백수가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요즘의 젊은 친구들처럼 공시생 노릇한 지 1년이 좀 지났을 것이다. 졸업한 그 해 늦은 가을 어느 날 나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다.

  말투가 조용조용한 것을 보니 도서관 한 귀퉁이쯤인 듯했다. 잠시 기다리라 해놓고 어딘가로 이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선생님~~” 하고 다가왔는데 그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달래고 어르며 “힘들지?” 하고 빈 말이라도 나와 줘야 하는데 내가 더 울먹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어떤 졸업생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어서 그들에게 가급적 연락을 잘 취하지 않는데 이번에도 역시 내가 먼저 내 다짐을 깨뜨리고 말았다.

  부담을 주지 말자. 취업했느냐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하자. 나까지 나서서 그들에게 걱정을 보태려는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말자.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를 학생들과 함께 보고 있는데 이세음 생각이 덜컥 난다. 지금쯤 사회복지공무원 시험이 끝났을까. 아무래도 떨어졌나보다. 합격했으면 먼저 연락을 줬을 텐데……. 시험공부에만 전력하려고 일부러 카톡이 되지 않는 2G폰을 사용하는 이 친구에게 문자라도 보내볼까? 몇 번이고 거듭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내 문자를 날리고 말았다.

  “잘 지내고 있지?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를 보고 인도의 라다크 어디쯤에서 쪼(암소와 야크의 교배종 이름)와 함께, 그리고 판공초에서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었던 세음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내요.”

  답장이 날아들지 않는다. 나는 행여 문자가 왔을까봐 몇 번이고 핸드폰 화면을 켰다가 껐다.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나는 방정맞은 생각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 버렸다. 그런데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포기하고 있던 3일차에 문자가 날아왔다. 그리고 통화까지 했다. 다음 날이 시험이어서 모든 통신을 차단해 놓았었단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며 멍 때리다 올 것이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것이란다. 그런데 무엇을 시작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단다. 나는 판공초에서 “세상이여 내게 덤벼라!”라고 외쳤을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슴이 아파왔다.

  세음이가 4학년 2학기 때였을 것이다. 대학 2년을 마친 후 휴학을 하고 1년 가까이 혼자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온 사실을 나는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하여 모은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날자, 오리배>에 나오는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와 우유니 사막, 마추픽추, 그리고 이키토스에서의 아마존 정글 투어까지 하고 왔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음의 이 소중한 경험을 어떻게 공유시켜 볼까. 프로그램을 결산하는 마지막 모임에서 이 친구의 여행기를 다뤄보기로 작정했다. PPT로 작업을 하던 중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인도에서 세음이가 달라이라마 바로 옆에서 찍은 사진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당연히, 어떻게, 달라이라마와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정작 이 친구는 그 분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냥 많은 승려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단다. 오히려 나를 향해 의아해 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순간 이 친구에게 달라이라마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아는 바를 알려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행기록 작성 과정 전 미션으로 영화 『티벳에서의 7년』, 다큐 『오래된 인력거』, 책 『오래된 미래』를 꼭 보고 읽을 것을 적극 권장했다.

  세음은 이 미션을 모두 마치고 나타나더니 내 앞에 다소곳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고... 본인의 무지를 깨닫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그 때가 2017년 겨울 기말시험 전이었다.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세음의 당시 PPT 자료가 지금도 내 PC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세음을 약간 알고 지냈던 어떤 여학생에게 10번도 넘게 세음이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내 책상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PPT를 계속 보여주기도 했다. 이세음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멍 때리고 오겠다던 26살의 세음은 지금 밥을 푸며 봉사하는 중 (사진 없음-올린 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어서 세음에게서 빠져나와 더 이상 실수하지 말고, 센치한 생각에서 멀어지자고 맘먹어 본다.

  세음은 반드시 알을 깨고 나올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돌아올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라다크의 ‘왕모’ 소녀는 16세 어린 나이에 출가出家의 길을 떠났다. 세음은 대학 2학년 때, 그리고 못다 한 질문을 향해 26세에 재차 여행을 떠났다.        

  “늦었다는 생각일랑 거두시라. 나이가 50이 되었어도 60을 넘겼어도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단다. 이세음! 응원한다.”

  내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책을 한 권 내도 좋을 만큼 세음이 글이 참 좋았다는 생각 말이다. 보고 싶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677


[2019-07-17 12:28:1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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