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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22. 영화'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 미시마 유키코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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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서관> 22. 영화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 미시마 유키코


  그 많던 양장점과 양복점



  나도 어느새 옛 사람 축에 들어가게 되었나 보다. 옛집, 옛맛, 옛옷, 옛가구, 옛책 등등 옛것들이 구미에 당긴다. 그것들이 자꾸만 그립고 때때로 소장하고픈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젊은 친구들이 흔히 쓰는 말 신상. 이른바 새로 나온 상품은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생각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 입고 나갈 옷을 뒤적이다가 장롱 구석에 20년 이상 된 블라우스가 추레하게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꺼내어 이리저리 살펴보니 제법 입을 만 해보였다. 팔을 살살 들이 밀어본다. 다행히 잘 들어간다. 오호라? 제법인데? 단추도 잘 잠가지는 것이 신기했다. 내일 모레면 예순인데 몸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리 만무하다. 그때보다 몸무게가 엄청 늘었는데도 옷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마 그 시절 유행이 넉넉하게 입었던 탓이었으리라.

  나는 그 꽃무늬 블라우스를 올여름나기 옷으로 찜해 놓았다. 그래도 왠지 미심쩍어 평판을 들어보는 편이 좋겠다. 하여 남편에게 물어보니 하시는 말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쫄장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낡아 보인다고 한 소리 더 보탠다. 나는 이럴 때 억지를 부리고는 한다. 색깔이 좀 바래서 그렇다. 어깨도 잘 맞고 팔도 끼이지 않는다.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시키지도 않은 제스처까지 취해 본다. 그래도 남편은 아무래도 입지 않는 편이 좋겠단다. 미련 갖지 말고 딸내미에게 주란다. 나는, 그 애는 아직 입을 때가 되지 않았다. 1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품을 좀 늘려 빈티지하게 입고 다닐 거라며 괜스레 목소리 톤을 올리고 말았다.

  그의 평판이 자꾸만 목에 걸리어 소파에 앉아 옷을 살펴본다. 뒤집어서 늘릴만한 구석이 있는지 들여다보는데 겨우 1cm나 늘릴 수 있을까? 옷감을 야박하게 썼다는 생각에 포기해 버릴까 했지만 쉽사리 동의가 되질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입고 거울 앞에 서 본다. 남편의 말이 90%가 사실이다. 젊은 날에 즐겨 입었던 옷이 왜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걸까.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옷을 제자리에 걸어놓고 말았다.  

  시집도 못 가고 직장과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내 월급보다 과한 돈을 들여 옷을 사다주고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곤 했다. 본인의 옷을 챙길 만큼 여유로워 본 적이 없는 엄마를 생각한답시고 제법 큰돈을 썼는데 되레 야단이나 맞다 보니 풀이 죽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하느니 옷을 사다 드리는 횟수를 대폭 줄이기까지 했다. 엄마는 그래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던데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아서 불편하다, 색깔이 너무 밝다 등등. 실컷 거금을 썼어도 상처만 입은 나는 다시는 옷을 사다 드리지 말자 차라리 돈으로 드리자 다짐까지 했었다. 당연히 엄마는 시장 리어카에서 옷을 사 입으셨다.    

  안 되겠다. 백화점 가는 것은 죽어도 싫다 하시고 나는 엄마가 원하는 옷을 제대로 반영하여 구입하기로 맘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칼라도 있고 사이즈는 훨씬 오버한 것으로, 그리고 점잖게 생긴 옷을 사다 드렸다. 그제야 엄마는 낙낙하니 좋다, 이제 폼이 난다며 흡족해 하면서 그 옷을 즐겨 입으셨다.

  이제 내가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된 것일까.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져 가는 나이에 진입하다 보니 옷이란 옷은 거의 한두 가지 스타일로 요약이 되는 옷을 찾게 되었다. 칼라가 반드시 있거나, 목의 주름을 가려 줄 것, 큼직할 것 등.

  미나미 양장점의 그녀라면 젊은 시절 내가 즐겨 입었던,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장롱 속에 묵히고 있는 옷들 수선해 줬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으로 재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듯 젊은 장인을 찾을 수가 없다. 옷 잘 만들고 수선 잘 하기로 소문났던 그 많던 양장점과 양복점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장터에 심부름 갔을 때 본 양복점의 나이든 아저씨가 콧잔등에 돋보기를 걸치고 옷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던 모습들은. 교복을 맞추러 들른 양장점의 아주머니가 손목에 찬 바늘꽂이에서 핀을 빼어 이리저리 내 몸의 치수를 재고 또 재며 확인하던 그 풍경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일본 영화를 통해 그때 그 장면들을 연상시키고 있는 내 처지가 자못 안타깝다.  

  쓸 만한 옷들을 버리지 않고 장롱 속에 박아놓았더니 간혹 자식들이 입어줄 때도 있다. 이럴 때 나는 어깨가 들썩여진다. 함박웃음이 자꾸만 피어난다. 장성한 모습이 대견하고 어여뻐서 혼인 시계도 반지도 살며시 디밀어 본 적도 있다. 실제로 딸내미는 내 혼인 시계를 일이년 동안 내리 차고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일정 기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고 살자며 심플한 삶에 목소리를 높이는 무리들의 얘기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고 있다. 물려줄 만한 물건들이 어디 있을까 둘러봐도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은 아들내미가 30년가량 된 나의 당초(여러 가지 덩굴풀이 꼬여서 뻗어 나가는 모양/속뜻-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져 “쉬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문양 은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어 보고는 너무 멋지다며 욕심을 내기에 얼른 주어 버렸다. 대를 이어갈 귀한 반지이므로 잘 간직하라는 당부까지 덧붙이며 말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34


[2019-07-09 15:38:5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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