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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작성자 : 이병초 


환절기(외 1편)
이병초


감기약에 수면제라도 들어간 건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꿈인지 생신지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어금니 빠진 데 쟁여지는 듯
절로 눈이 시었다
감아도 떠지고 뜨면 감기는
그 찰나를 비집고
깨진 유리창에 별을 오려붙인 답안지
거기 적힌 절취선이란 글자가
가깝게 다가오곤 했다

내겐 답안지가 필요 없었고
절취선은 더구나 가당치 않았다
답을 쓰기도 전에 누군가가
내 삶을 작성해버렸던가
때로 나는 길거리에 내쫓겨
서울을 뱅뱅 도는 2호선을 탔다
그럴 때마다 귓전을 때리던 파도소리
밑 터진 어제와 오늘을 꿰매어
답안지에 돌돌돌 홀미치는 파도소리가
눈도 못 뜨고
왼종일 귓속에서 질척거렸다

한 벌의 추억 같은 내 몸이
감기약에 취한 듯 점점이 찍힌  
절취선에 감긴다
천장에 그려지다 만 빗물 지도를
손갈퀴로 긁어내리며  
꿈도 생시도 아닌 내 시간을
파도소리로 찍어내자고 앙심 먹었지만
젯밥 먹으러 온 귀신같이
턱을 덜덜덜 떨며
물미역처럼 축축해진 몸을 뒤척이며
베갯잇 파고드는 비린 냄새에 몸이 기울곤 했다



小寒

  느닷없는 강추위에 지하수 뽑아 올리는 모터가 얼었습니다 기술자는 모터 곳곳을 풀어놓고 뜨건 수증기 뿜어내는 가느다란 대롱으로 그 속을 쑤석거리며 얼음을 녹입니다 녹물 묻은 제 실장갑에도 뜨건 수증기를 쏘아댑니다
  사흘째 얼어붙었던 모터가 녹물을 쏟아냅니다 허연 김을 뿜으며 얼음조각이 튀는 물을 콸콸 쏟아냅니다 모터를 헌이불로 두껍게 덮어줍니다 물 호스도 헌옷으로 감싸줍니다 오래 전 뽑아 올린 꿈의 목록을 칼바람이 감쌌는지 내 볼에서 쇳소리가 납니다



이병초 약력
전주에서 출생. 1998년 문예 계간지《시안(詩眼)》에 연작시「황방산의 달」이 당선, 시집으로『밤비』(2003년, 모아드림),『살구꽃 피고』(2009년,작가),『까치독사』(2016년, 창비) 등이 있고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07-07 07:33:0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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