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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19.영화'율리시즈의 시선'/ 테오 앙겔로풀로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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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서관>19.영화'율리시즈의 시선'/ 테오 앙겔로풀로스


  부유하는 오딧세이- 그대 무엇을 찾아 그렇듯 헤매이는가



  겨울이 막 시작될 때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유례없는 추위가 올 것이라며 공포를 조장했다. 이런 말은 거의 매년 들어왔어도 나는 왜 자주 속으며 몸을 움츠리곤 하는지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염려했던 큰 추위는 오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빙하가 녹아나더라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따뜻한 것이 좋다’며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먼지의 시간(Dust of Time)』처럼 지난 겨울도 흩어져 먼지가 되었는가. 어찌 되었든 물리적 숫자로는 3월이니 봄이 오긴 왔을 터이다.『먼지의 시간』(영화 OST는『시간의 유해』라고 번역함)이라는 영화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닌데 이번에도 역시 샛길로 빠지고 말았다. 그의 영화들을 좋아하다 보니,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이해하시라.

  우리는 지금 남해로 봄맞이를 하러 가고 있다. 봄나들이라는 사치를 누려 본 지 대체 몇 년 만인가. 남쪽에서부터 봄이 온다는 속설을 믿으며, 꽃망울은 올라오고 있을까. 봄볕은 따뜻할까. 기대 반 우려 반 하며 고속도로를 내리 달린다. 내달리려고 했으나 이놈의 안개인지 미세먼지가 자꾸 시야를 가로막는다. 실컷 수다를 떨고자 했으나, 이내 입이 다물어진다. 운전자에게 방해되는 짓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뿌연 안개 속을 부유하는 느낌이다. 당연히『율리시즈의 시선』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영화 초창기의 기록물 마나키스 형제가 만들었다는 미현상 필름 3통을 찾아 총성이 멈추지 않는 발칸의 여러 나라와 도시를 헤매던 주인공이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필름 3통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마는 여정. 안개가 눈앞을 가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총을 쏘지 않으리라 믿음을 갖고 거리로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즐기던 사람들에게 조차 여지없던 총성.

  내가 영화『율리시즈의 시선』을 쓰겠다고 하니, 같은 집에서 사는 작자가 그렇게 어려운 영화를 감당할 수 있겠냐며 깜냥에 걱정되는 눈초리를 보냈다. 호메로스의『오디세이아』도 읽어보지 않았잖느냐. 걱정에 걱정을 보태준다. 그래도 나는 쓸 것이다.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를 견디며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이 마음을 담아 보란 듯이 쓰고 말 것이다. 입술을 악다물어 본다.

  나는 어렸을 적 시사에 관해 논하던 뭇 어른들이 ‘미국사람 믿지 마라, 소련한테 속지 마라. 일본사람 일어선다.’라며 구전되다 시피 하던 얘기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른들은 미래를 예측했던 듯하다. 내 소견으로는 그들의 얘기가 거의 맞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한때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이었다가 이제는 절망이 되어버린 레닌.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사회주의 국가 루마니아에서 철거된 레닌의 동상을 배에 싣고 도나우 강을 따라 내려가던 장면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는다. 한때 그들의 우상이었을 레닌. 그 동상을 보기 위해 달려오던, 강가에서 성호를 긋거나 무릎을 꿇거나 그 동상을 쫓아가던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누군가는 무너지는 사회주의를 보며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으리라.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상과 이념의 무상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이 영화 권장한다.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를 넘어서서 도박 산업으로까지 전락한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사람들, 속도전에 몰입되어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절대로 보지 마시라.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수면유도제가 필요한 분들에게 딱 좋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가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음악이 이렇게 대접받는 것이 아프지만 나도 별 도리 없이 속되게 여러 사람들이 주절대는 투로 얘기하고 말았다. 행여 먹칠이 되었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란다. 나의 역량이 이 정도밖에 미치지 않은 점에 대하여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되어 “한국영화계가 상업성에 치우치는 동양의 할리우드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앙겔로풀로스. 조국 그리이스를 너무나 사랑했던, 영화보다 더 영화스럽게 영화를 찍다가 오토바이에 치여 죽은 거장. 올해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젊은 감독 엘로디 렐루의『테오 앙겔로풀로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는 당연히 봤다. 그를 기리는 한 편의 서사시 같기도, 짧은 아카이브 같기도 했다. 같은 집에 살아서 영화관에 함께 온 작자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약간 벌린 채 졸았다. 그가 코를 곯을까봐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무려 3시간 분량의 영화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눈을 떼지 않고 보았다. 아들은 너무 어려서 함께 보자는 말도 하지 못했고, 딸내미는 끝까지 잘 보아줬다. 그 대신 아들은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음악을 열심히 들어줬다.

  사상도 이념도 모두 남의 얘기 같은 봄날. 남해는 미세먼지가 걷혀 가고 성질 급한 연둣빛 생명들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310


[2019-06-14 14:08:5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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