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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17 책 '집을 생각한다'/나카무라 요시후미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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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17. 책 '집을 생각한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또 따른 결핍 집 생각


  한 아파트에서 십 년을 사는 동안 나는 따분하고 권태롭기 짝이 없었다. 남편이 나 몰래 아파트 문서를 친정오빠에게 부도 막으라며 갖다 주었을 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당시 1억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오래된 아파트였을지라도 나에게는 궁궐이나 다름없었다.

  신혼 초 앞뒤가 꽉 막힌 아파트 빌딩숲 사이에, 더군다나 지대가 푹 꺼져서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싸구려 전세 연립주택에서, 첫 아이와 함께 보낸 첫여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찌는 더위에 온 식구는 숨이 콱콱 막혔다.그 더위와 습을 피해 대출을 받아 이사 간 곳은 지대가 높은 곳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아파트는 천국이었다.

  학교에서 퇴근한 어느 날 우편함에 날라 온 법원의 통고장을 받고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길거리로 쫓겨나지 않으려, 월급을 압류당하지 않으려, 시댁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서울로 갔다.

  바야흐로 주말 부부의 막을 열게 된 것이다. 그 빚을 갚느라 돈이란 돈은 은행과 신용금고에 갖다 주고 나는 그 아파트에서 죽을 똥 쌀 똥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벽지가 누렇게 떴어도, 커튼이 칙칙해도, 보일러가 오래되어서 말을 듣지 않아 말썽을 일으켜도, 부엌 수도꼭지를 바꿔야 했을 때도 미루고 또 미뤄야 했다. 커튼을 쳐다 볼 때마다, 누르팅팅한 천정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마다 짜증이 나고 울증이 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빚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멈춰 뒀던 집에 대한 상상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는 이제 쳐다보기도 싫었다. 현재의 언덕 위 그 아파트를 떠나야 돈이 새어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앞뒤로 좌우로 뻥 뚫려 있어서 돈이 다 날라 가 버린다는 속설을 믿게 되었다.

  웬만한 장소에 평수가 좀 되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면 족하리라. 어차피 인생은 빚잔치 아니던가. 시중은행보다 저금리에 퇴직할 때까지 갚아나갈 요량으로 공제회에서 대출을 받으리라 맘먹고 있는 판에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나타난 것이다.

  붉은 벽돌에 비록 담쟁이는 타고 오르지 않더라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쯤에서 본 유럽색이 느껴져 실내를 보지도 않고 짐을 쌌다. 서울 학원가에서 국어 돌풍을 일으켰다는 남편에게 집 사내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남편은 두말없이 집 등기까지 내 앞으로 해주었다.

  그러나 잔금을 다 치루고 이사한 우리 가족은 각자의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여 실망이 컸다. 남편은 벽난로가 없음에, 어린 자녀들은 집안에 다락방과 그곳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어서, 나는 생각보다 집의 덩치가 너무 커서 장차 내야 할 세금 생각에 낯빛이 그리 밝지 않았다.

  그 빚도 다 청산하고, 자식들은 모두 집을 떠나고, 더듬어 보니 15년 이상을 이 집에서 살았다. 여기저기 손볼 곳도 늘어나고 눈썰미라고는 영 젬병에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작자와 살다 보니 또 울화가 치민다.

  옥상 앞에 들어선 저 아파트 좀 보라고 이제 땅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살림을 줄여야겠다고 인생 후반 ‘라스트 홈’을 반드시 짓고 말겠다고 나는 틈만 있으면 그를 윽박지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안방마님이 될 것이다. 남편은 사랑방을 만들어서 쫓아낼 것이다. 한옥은 비록 아닐지라도 그 미학을 응용해서 말이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간섭 없이 잔소리 없이 해방구를 마련하시기 바란다.

  나도 드디어 자유를 누릴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들으면 코웃음 치겠지만) 거창하지 않게 소박하고 낮게 살 것이다. 사랑방, 안방, 장차 찾아 올 손주들의 다락방, 그리고 거실과 부엌이면 족하다.

  손주들을 위한 다락방 위에 천창을 내리라. 올라가는 계단은 두툼한 나무여야 하고 내려올 계단은 미끄럼틀로 만들고 말리라. 내 자식들의 꿈과 염원을 지켜주지 못한 거 꼭 지켜 주리라. 주택으로 이사해 왔을 때 다락방이 없어 얼마나 섭섭해 했던가.

『집을 생각한다』 의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이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이 책 나온 지 십여 년 이상 되었을 것이다.

  딸내미가 나의 성향을 어느 정도 닮아 책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동네서점을 기웃거리다가 요샛말로 좀 핫한 서점에서 알바도 해 본 모양이다. 이제는 내가 그 애를 따라서 큐레이션 서점을 순례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들른 군산의 모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그 서점 북 큐레이터는 서른이 갓 지났을까? 어림이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에 대수랴. 이목 끌기 좋은 위치에 이 책을 버젓이 진열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서점의 큐레이터에게 후한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나는 직업상 많은 책을 선정해야만 한다. 예산이 많은 도서관들은 책을 거의 골라서 사지 않아도 된다. 신간이 나오는 족족 사들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도서관처럼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곳은 조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신간을 주목하곤 한다. 안목 또한 중요하다. 내가 일일이 읽어볼 수 없을 때가 거의 태반일 때 나는 매체나 서평들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이때 내 눈에 들어온 책이리라.

  일단 도서관에서 구입하고, 서가에 배가 되기 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나는 이 책을 하루 만에 완독했다. 그러고도 나는 이 책을 내 집에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구입하여 우리 집 책장에 꽂아 놓았다.

  집짓기 상상이 취미인 나는 이 책과 함께 알차게 구체적으로 집을 지어야 했으므로. 그런데 지금 나의 집엔 이 책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가 리모델링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던 중 우리 집 붙박이장을 설치하러 왔을 때 이 책을 그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출간된 지 십 년이 지난 책이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서점의 책꽂이가 아니라 진열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는 도서관 서가에서 다시 꺼내들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말한 “집이 갖추어야 할 열두 가지 풍경”을 어찌 모두 만족시킬 수 있으랴. 내 집짓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2019-05-29 19:23:4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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