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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14 책 짱뚱이시리즈 4 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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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서관>14. 책 '짱뚱이 시리즈' 4/ 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정순남의 웃음소리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너랑 한동네에 살았지 싶다. 특히 우리 집은 중학교 가는 길목 외딴집이어서 중학교 3년 내내 등하교를 함께 했다. 키가 작아서인지 네 가방은 네 몸의 삼분의 일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버짐 핀 얼굴과 훌쩍이는 코. 긁적이던 머리. 우리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랬기 때문에 그런 것쯤은 흉이라고 할 수도 없다. 홀어머니 밑에서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나는 그보다 두 배는 더 심했을 것이다.

  너는 우리 집 사립문 앞에서 늘 내 이름을 부르곤 했다. “현옥아~~ 학교 가자~~.” 현옥의 ‘옥’자에서 옥타브를 한껏 올린 다음 학교 가자의 ‘가’자에서 두 번째로 톤을 올리다가 내리며 ‘자’에서 길게 빼던 너의 변함없던 목소리. 우리가 너희네 밭을 지나 학교를 가고 있노라면 이른 아침부터 밭일에 열을 올리고 계시던 네 어머니는 허리를 한껏 펴시며 큰소리로 외치셨다. “고목나무에 매미 붙은 거 같데이. 현옥이랑 같이 다니지 말그레이~”하며 곱게 눈까지 흘기셨다. 경상도에서 전라도 땅으로 이주하신 네 부모님. 경상도 말씨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나는 특히 네 어머니 억양이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아! 그러고 보니 순남이 엄마보다 더 이상한 말씨를 구사했던 경옥이라는 친구 부모님이 생각난다. 우리는 경옥이네 집을 피난민집이라고 불렀다.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듣고 우리도 그대로 따라 했다. 목이 좋은 장터에서 포목상회를 운영하여 돈을 많이 번 부잣집이었는데 그 부모님 말씨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여하튼 네 웃음소리는 정말 명품이었다. 너는 거의 맨 앞자리에 앉곤 했었다. 우스갯소리를 자주 하셔서 우리의 배꼽을 잡게 했던 중학교 1학년 국어시간. 사실 선생님의 농담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책상을 부여잡고 거칠 것 없이 웃어대던 네 웃음소리였다. 모두들 한바탕 웃고 난 뒤 숨을 가다듬고 있는데 너의 염생이똥 굴러가는 소리(선생님이 붙여줬음)는 멈출 줄 몰랐다. 너의 마지막 “꺄르르~~”하고 숨넘어가던 웃음소리가 더 웃겨서 우리들은 한바탕 책상을 두들기며 난리를 치며 웃고 나야 그 상황이 마무리 되곤 했었다.

  너의 그 호탕한 웃음소리는 다 어디로 갔느냐며 넌지시 물었다. 점잖은 남편 만나 이렇게 됐다고 했다. 남편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호호” 하고 웃는다고 했다. 특히 사무실에서는 더 얌전하고 조신하게 군다는 것이다. 몇 십 년 그리 살다보니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러던 정순남 여사 동네친구들 앞에서는 목젖을 보이며 큰소리로 웃고 있다. “호호”가 아니라 “하하하”

  전라도 땅을 떠나서 살아 본 적이 거의 없는 나보다 사투리도 훨씬 잘 쓴다. 서울 사모님 된 지가 언제라고 지금도 “긍게 말이여. 아니랑게. 그랬당게로~~” “니들만 만나면 완전 체면이고 뭐고 없어진당게로~” 이러는 거다. 이제 남편 눈치 보지 말고 니 멋대로 살아도 될 나이가 되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렁게 지금도 그이 앞에만 가면 자동적으로다가 그렇게 되어 버린당게. 나 참. 습관이 되어 버렸나벼. 얌전 뺄 일이 뭐시 있다고 시방도 그러는지 몰라.”

  이십 년 넘게 한 달이면 두어 번 병들고 연로한 부모님 뵈러 내려온다고 했다. 이것저것 반찬 만들고 사들고 와 봐야 잘 드시지도 않는다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낳고 키워 준 부모인데 그들을 팽개치고 놀러 가본 적이 거의 없다고도 했다. 어렵사리 예약해 놓은 해외여행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맘이 짠하고 죄책감이 들어서라고. 내 인생은 어디 있느냐. 눈물이 맺히는 그녀를 보니 내 맘도 그저 짠해진다.

  지난번에는 딸랑구 때문에 화가 났단다. 어찌어찌 키우고 가르치고 혼인시켜 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시집가니까 너무 좋단다. 지 멋대로 간섭받지 않고 살게 되니 좋아 죽겠다는 말을 들은 정순남 여사 꼭지가 돌 지경이 되더란다. 섭섭해서 미치겠더란다.

  “애지중지 키워 놓으니 저딴 소리로 속을 뒤집어 놓질 않나. 부모에게 바리바리 싸들고 가봐야 냉장고 열어보면 그대로 있지를 않나. 나는 이게 뭐냐.”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도 이내 사라지고, 나무 밑이 왜 이리 덥냐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다.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57

[2019-05-08 18:57:5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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