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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6.책 '내 친구 빈센트' / 박홍규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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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 6.책 '내 친구 빈센트' / 박홍규

  반 고흐는 내 친구!

  나는 이해한다. 싸구려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 젊은 그들이 스타벅스에서 우아한 표정으로 커피 마시는 것을. 나도 딱 그랬었다. 값싸고 양이 많은 장미호떡집에서 한 끼를 때우고 ‘빈센트 반 고흐’라는 찻집에서 막차를 놓치기 전까지 값비싼 커피로 호사를 누렸다. 시위대 꽁무니나 따라 다니다가 대학 4학년이 되자 뭘 해먹고 살까 참으로 막막하던 때, 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전주시 복판의 한 찻집 간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취업과 진로, 시대모순의 통점에 닿고 싶은 욕망이 뒤엉켜 있던 젊은 시절 ‘빈센트 반 고흐’라는 간판이 번쩍 내 눈에 들어왔다.

  지하에 자리한 그곳에는 고흐의 여러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고, 테이블 사이를 넘나드는 원두커피 향에 묻어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고 있었다. 막걸리집이나 자취방에서만, 쥐똥과 종이 나부랭이가 굴러다니다 못해 퀴퀴하게 눌어붙은 데서만 문학과 시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말로만 들었던 고흐의 그림을 만났고 막연하게나마 고흐의 열정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가 간질을 앓았고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그렸고 때로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다는 것 정도 밖에는 아는 게 없었지만, 맨주먹뿐인 내 모습-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타자화된 내 모습- 그러함에도 뭐를 해서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피치 못할 내 사연이 그의 그림에 겹쳐지고 있었다.

  2007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서울의 시립미술관에서 ‘반 고흐’전이 열린다고 언론에서 호들갑들을 떨었었다. 엄청나게 비싼 그림값이며 그 그림들이 보험에 들었다면서 끌어대던 천문학적인 보험가액이 내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전시회를 내 생전에 두 번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온 가족을 대동하고 덕수궁 옆 미술관에 갔다. 내가 염려했던 대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고흐의 그림 해설을 맡은 ‘도슨트’라던가 하는 그녀는 우리들 차지가 아니었고, 사람들 발길에 밀려 감상은커녕 미술관 내부나 구경하고 나온 꼴이 되고 말았다. 천재, 광기, 정신분열, 자살….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에 걸맞는 강렬한 인상을 나는 만나고 싶었다. 그림들은 미술관을 꽉 채운 관람객들에게 떠밀려 환등기가 연속적으로 비쳐대는 사진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자화상, 평범한 이웃, 농부, 노동자, 들판, 꽃들, 나무들에 나는 일별할 수조차 없었고, 찻집 ‘빈센트 반 고흐’에서 나와 처음 만났던 그림들은 나와의 해후를 멀리 연기해 버렸다. 유약했던 그의 삶에 비해 눈빛과 색채가 유독 강하면서도 때로 야생마처럼 거칠다는 인상 외에는 달리 느낌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늘 단숨에 '내 친구 빈센트'를 읽는다. 서양 사람들은 흔히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성(姓)을 부르게 되어 있다. 나 역시 ‘반 고흐’라고 부르는 게 훨씬 익숙하다. 그런데 저자 ‘박홍규’는 굳이 성을 무시하고 이름을 불렀다. 저자는 고흐가 그의 그림에 서명을 ‘빈센트’라고 한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고흐의 친한 벗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교인들 집을 방문하기 위해 지나던 들길 산길이며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체취였다. 화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수고와 기대가 ‘고갱’의 무시로 무산되었을 때, 여인에게서 버림받았을 때, 도시 그림판에서 환영받지 못했을 때 그가 늘 그리워했던 것은 북쪽의 자연이었다. 밀레의 추종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늘 사실을 그렸다. 도회지 변두리에서 만났던 이웃들을 그렸고 광부와 농민들을 그렸다. 그림 거간꾼들과 협잡하지 않았고 돈 있는 사람들을 그리지 않았으며,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치열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그는 그림을 그렸으되 그 그림의 주제는 고흐 자신의 몸속에 기록된 당대의 사회사이자 생활사였다. 치열하게 독서를 했고 미친 듯 화폭에 매달렸던 당대 지식인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던 수많은 수식어는 이제 고흐의 표상이 아니다. 정신적 동지 물질적 지주였던 동생 ‘테오’와의 교감이 그들이 나눈 불멸의 편지가 이제야 나를 훈훈하게 만든다.

  이 책을 쓴 영남대 법학과 ‘박홍규’ 교수의 글은 정답다. 고흐를 이리저리 덧칠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 재해석하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한다. 싸구려로 끼니를 때우고 스타벅스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는 정다운 그들과 찻집 ‘빈센트 반 고흐’에서 시대에 타자화되어 내 모습을 오래 지켜보던 ‘젊은 나’가 그의 '감자먹는 사람들'을 자꾸 들여다본다. 봄비가 나수 내리고 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82

[2019-03-13 18:17:4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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