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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10. 크림빵과 노인1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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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10. 크림빵과 노인1

1.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6‧29 선언’이 ‘속이구 선언’이 되어가는 낌새를 구체적으로 알아차릴 때쯤이었다. 친구는 K는 오늘도 대포집에서 나를 잡고 조국의 현실을 운운했다. 군부독재의 연장선에 불과한 6‧29 선언을 깨부숴야 한다고 초저녁부터 입에서 불을 뿜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얘기를 들어줄 처지가 못 되었다. 글공부를 한다고는 했지만 허구헌 날 붓방아만 찧는 반편이였으니까.

  친구는 얼추 취한 것 같았다. 친구가 먹은 술의 반에도 못 미치는 주량이지만 내 얼굴은 녀석보다 더 불콰하게 달아올랐을 것이었다. 초저녁술도 안 되는 내 얼굴이 밤마다 술을 푸는 친구 얼굴보다 왜 더 붉은지 알 수가 없지만, 남들 보기엔 내가 혀 꼬부라진 고주망태로 보였겠지만 억울하게도 내 정신은 말짱했다. 대포집에서 나온 시간이 9시가 조금 안 되었을까. -저기 오네, 젊은 넋들 들판 가로질러- 라는 가사를 끼고 우리는 동문 사거리, 홍지서점 앞을 지나 관통로 사거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K가 풍년제과점 앞에서 걸음을 딱 멈췄다.

  “왜?”

  “크림빵이 먹고 싶어서.”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과점엔 평소와 다름없이 이런저런 빵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크림빵 둬 개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뒷주머니에서 막 지갑을 꺼내려는데 웬 노인이 나와서 빵을 안 팔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그러나 확실했다. 계산대에 서 있던 여직원을 뒤로 보낸 노인은 무조건 빵을 안 팔겠다고 손을 내젓는 것이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는 것이냐. 빵집에서 빵을 안 팔다니.

  “왜 빵을 안 팔아요?”

  “너한테는 안 판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째서 저에게만 안 팔아요?”

  “안 팔면 안 파는 것이지, 이놈아. 어쩔래!”

  나는 화를 벌컥 냈다. 빵집이 뭐 여기뿐이냐, 무슨 이따위 빵집이 다 있냐,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인은 한 술 더 떴다. 젊은 나하고 맞장 뜨겠다는 듯이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오지를 않느냐. 빼빼마른 노인이었다. 아니 깡마른 노인이었다. 머리는 백발이었는데 짧은 상고머리였다. 팔뚝을 걷어붙인 노인은 벌써 내 눈앞에서 더운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막히다는 느낌보다는 이거 참 난감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노인과 싸운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크림빵도 못 사고 풍년제과점을 나왔다.

  아침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할 만큼 망신당한 것도 노인께 탈탈 털려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라는 생각이 치통처럼 골머리를 쑤셨다. 다른 학우들보다 문학적 소양은 얕을망정 내가 노인에게조차 탈탈 털려버릴 만큼 뒤가 허술한 청춘은 아니었다. 시대의 불감증 환자라고 비웃음은 받을지언정 술 먹다가 막차가 끊어졌다고 아무에게나 택시비를 꾸는 덜떨어진 배꼽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싸구려 티셔츠를 걸치고 군복바지를 검게 염색해서 입고 다녔을망정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게 내 삶의 원칙이었으니까.

  이런 나에게, 남들에게 되도록 민폐 안 끼치고 살아온 선량한 나에게 노인은 왜 빵을 안 판다고 한 걸까. 내 얼굴이 홍콩 삼류영화에 나오는 범죄자같이 보였던 것일까, 그랬다면 더 나에게 접근을 못했을 터인데. 생판 처음 본 나를, 더구나 얼굴이 시뻘갰을 나를 싹수 있게 봤을 리도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 노인이 정말 왜 그랬을까. 아침 내내 구들장을 짊어지고 어젯밤 일을 요모조모 짚어 봐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점심때 쯤 되어서 세수를 하고 1년에 한두 번 입는 검은 양복을 꺼냈다. 관통로 사거리, 풍년제과점 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갔다.

  “어른신 계셔요?”

  나는 다짜고짜 노인을 찾았다.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56

[2019-03-08 21:47:4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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