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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18. 태산처럼 쏟아지는 잠 2. 2004-06-14 04:57
작성자 : 鄭洋 



  태산처럼 쏟아지는 잠 2.


  휴가철 관광객이 많아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바쁘다. 케이블카에서 보면 저 아래 골짜기에는 등산로를 따라 태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이다 말다 한다. 오르는 데 5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쉬엄쉬엄 5 시간인지 곧바로 5 시간인지는 잘 모르겠다. 5층 강의실만 올라가도 숨이 턱에 차오르는 나로서는 50 시간쯤 걸리지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돌계단으로 된 태산의 등산로는 아파트로 치면 400 층쯤 되는 높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매년 세계등산대회가 열린다나 어쩐다나 하는 소리를 얼핏 들은 일이 있다. 설마 저 사람들이 다 그 등산대회 연습하는 이들은 아니겠지.

  케이블카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시계를 확인해보긴 했지만, 막상 보조적 안전장치도 전혀 없이 마구잡이로 허공에 매달린 케이블카의 아슬아슬함 때문에 시간 같은 건 아예 까맣게 잊어먹었다. 저 아래 골짜기를 내려다 볼 때마다 오싹오싹 무서우면서도 그 무서움보다는 옆 사람들에게 무섭지 않은 체를 하는 게 더 진땀이 났다. 고소공포증인지 뭔지가 유난한 나로서는 아무리 태연한 척 하더라도 내 안색은 보나마나 노랗게 질려 있었을 것이다. 젊어서 속리산에 갔을 때도 나는 문장대의 쇠사다리를 끝내 오르지 못했었다. 어쩌다 억지춘향격으로 케이블카를 탈 때마다 나는 늘 진땀을 흘리곤 했는데 이 태산의 케이블카는 그중에서 가장 아슬아슬했고, 시간 재는 건 겁김에 까먹었지만 매달려 있는 시간도 가장 길었다.

  정상 근처에는 무슨무슨 유적지, 기념품상점, 식당들이 즐비하고 건너편 정상에는 호텔들도 있고 그 사이사이에 군데군데 해당화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마침 점심 무렵이어선지 그 해당화 꽃그늘에 둘레둘레 모여앉아서 뭘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둘레둘레 모여앉아 음식을 먹는 풍경이 나로서는 아주 낯익다. 마치 한국의 여느 관광지 같다.
  9시쯤 먹어야 되는 감기약을 아직 먹지 않아서인지 아까부터 이마에 열이 짚이기 시작한다. 빈속에 거푸 약만 먹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밥을 먹고 약을 먹어야겠는데, 케이블카를 또 타야하는 걱정 때문인지 영 밥 생각이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하물며 태산쯤은 말해 무엇하랴만 밥 생각이 너무 없어서 우리는 태산을 경후식으로 승격시키기로 했다. 우비(于飛)군은 여기 식당들은 밥맛이 별로라면서 내려가서 먹자고 한다. 우비군도 여기가 초행이라는데 여기 음식에 대해서 아는 체를 하는 건 순전히 나를 배려해서일 것이다. 내려가서 비싼 음식 좀 먹여야겠다.

  올라갈 때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카시아 꽃냄새가 숨에 막힌다.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구내버스를 타러 내려가는 길가 아카시아 나무 밑에 군데군데 쑥덤불이 자라고 있다. 중국에 와서 처음 보는 쑥이다. 제남에서도 황하에서도, 그리고 내가 가본 산동의 여느 시골길에서도 나는 이제껏 쑥을 보지 못했다. 중국사람들은 쑥을, 어쩌다 약으로도 쓰인다는 별 쓸모없는 풀 정도로 알고들 있다. 불현듯 쑥국이 먹고 싶다. 쑥국도 못 먹은 채 잃어버린 중국의 봄날들이, 먹고 싶은 음식들이 쏟아지는 잠 속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완산칠봉집의 육사스미, 홍도주막의 홍어회, 남문거리의 곱배기 소바, 평화동의 장어구이, 변산의 바지락죽, 삼천동 회센타의 매운탕, 아중리의 보신탕, 화산의 붕어찜 그리고 또 쑥국 쑥국... 쏟아지는 잠 속으로 보고 싶은 음식들이 보고 싶은 얼굴들처럼 겹치면서 자꾸 어른거린다. 나는 정말로 아픈가보다.

  오후 4시, 제남행 고속버스에 오르기까지 어떻게 어떻게 나는 용케도 잠을 참았다. 넉넉잡고 두 시간, 약도 밥도 먹었겠다, 그 중 적어도 한 시간 반쯤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내 행복한 계산은 그러나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무너졌다. 출발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라 좌석이 다 들어차야 떠나는 버스, 시동이 꺼진 채 운전석 옆 출입문만 열려 있는 70년대식 낡은 고속버스, 대여섯 개 남은 좌석이 들어차기를 기다리면서 후덥지근한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질질질 땀들을 흘리며 앉아 있다. 그냥 출발하자거나, 에어컨이라도 좀 켜달라거나 하는 이들이 아예 없다. 그냥 묵묵히 앉아 있다가 가끔씩 운전석 옆에 비치되어 있는 냉수통의 물이나 딸아마시곤 할 뿐이다. 이런 악조건을 불평 하나 없이 당연한 듯이 여기는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 앞 자리에 앉은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는 그 속에서 땀을 흘리며 서로 꽉 껴안은 채 눈들을 꽉 감고 있다. 잠든 것 같지는 않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껴안을 사람도 없이  눈만 꽉 감은 채 그렇게 40분쯤 땀을 흘렸다. 나도 참 대단하다.

  드디어 차가 떠난다. 머리 위 에어컨 구멍에 바람이 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바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시원하지 않다. 처음부터 줄곧 밍밍할 뿐이다. 에어컨은 안 켜고 그냥 바람구멍만 열어놓은 것 같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이냐, 나는 잠을 자야 한다.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가면서 몇 차례나 잠을 청하다가 드디어 나는 잠을 포기해버렸다.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땀 탓이 아니라 운전기사가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는 빵빵거리는 소리 때문이다. 고작 7,80키로의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무슨 그렇게 빵빵거릴 일이 많은 건지, 3,4분이 멀다고 자꾸 눌러대는 그 소리가 泰山鳴動보다 더 요란하게 자꾸만 내 토막잠을 짓밟고 지나간다. 泰山鳴動도 鼠一匹임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앞자리의 연인들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나보다. 꽉 껴안았던 팔들이 아무렇게나 축 늘어져들 있다.


- 2004-06-14 04:57 에 쓴글-

[2006-12-01 16:40:5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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